Quantcast
Channel: 여강여호의 신화가 있는 풍경
Viewing all 1980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

프로메테우스는 어떻게 저항의 상징이 되었을까?

$
0
0

[그리스 신화]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너는 살찌고/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거북이야!/다시는 용궁(龍宮)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푸로메디어쓰 불쌍한 푸로메디어쓰/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끝없이 침전(沈澱)하는 푸로메드어쓰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저항시인이었던 윤동주의 시 '간'은 조선의 식민지화를 보고 시인 자신의 희생적인 모습을 묘사해 양심의 회복을 노래하고 있다. 시 '간'에 담긴 윤동주의 저항의식은 '푸로메드어쓰'로 형상화된다. 푸로메드어쓰는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시 창작 당시의 표기법이다. 윤동주의 시에서뿐만 아니라 프로메테우스는 다양한 곳에서 저항정신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데는 프로메테우스와 인간 그리고 올림포스의 주인인 제우스와의 관계에 기인한다. 참고로 책의 첫머리에 쓰는 서문을 의미하는 영어 '프롤로그Prologue'가 프로메테우스에 그 어원이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프로메테우스가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위해 불을 훔치다 

 ▲불을훔친 프로메테우스. 사진>구글 검색


세상이 창조된 이후 어떤 신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땅을 정리하고 내를 파서 숲과 샘을 만들고 대지에는 비옥한 들을 만들었다. 이 때 바다에는 물고기가, 공중에는 새가, 대지에는 네 발 가진 동물이 등장했다. 그러나 신들에게는 그들을 섬길 보다 발달된 동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창조된 동물이 인간이었다. 이 임무를 맡은 신이 프로메테우스였다. 프로메테우스는 올림포스 신들보다 한 세대 앞선 티탄족에 속하는 신으로 이아페토스와 바다의 요정 클리메네 사이에서 탄생한 아들로 형제로는 아틀라스, 에피메테우스, 메노이티오스, 헤스페로스 등이 있다. 어쨌든 프로메테우스는 흙과 물을 반죽해 인간(남자)을 만들었고 다른 동물들과 달리 직립보행 할 수 있게끔해서 동물들 중 유일하게 하늘과 별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 때 아직 여자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만드는 동안 그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에게는 인간과 다른 동물에게 생존에 필요한 능력을 부여하라는 임무가 맡겨졌다. 에피메테우스는 각각의 동물에게 그에 맞는 능력을 부여했다. 가령 날개라든지, 손톱이나 발톱이라든지, 조가비....따위였다. 하지만 인간 차례가 오자 에피메테우스는 그 자원을 모두 탕진해 인간에게는 줄 것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 사실을 형 프로메테우스에게 알렸고 프로메테우스는 고민 끝에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주기로 결정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아테나의 도움으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불의 발견은 인류 역사의 커다란 분기점이었다. 신화는 이런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을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은 제우스가 이미 인간에게는 내어줄 수 없음을 선포한 터였다. 그 사연은 이랬다. 인간이 신과 협정을 맺을 때 프로메테우스는 늘 인간 편에 있었다. 그래서 제우스까지 속였던 것이다. 이를 눈치 챈 제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금하는 벌을 내린 것이다.

프로메테우스, 카우카소스산 바위에 묶이다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를 벌하기 위해 제우스가 인간 세상에 보낸 것이 바로 최초의 여자 판도라였다. '미리 아는 자'라는 의미답게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의도를 미리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그렇게 당부했건만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를 아내로 받아들였다. 이 때 에피메테우스 집에는 상자 한 개가 있었는데 그 속에는 갖가지 해로운 것들이 들어 있었다. 인간 생활에 해가 되기 때문에 인간에게 주지 않고 상자에 넣어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호기심 많았던 판도라는 이 상자를 열고 말았다. 결국 이 상자에서 나온 것들로 인간에게는 질투와 원한 등이 생겼고 갖가지 병들이 생기게 되었다. 다행인 것은 판도라 상자 맨 아래에 남아있던 희망 때문에 인간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절망에 빠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독수리에게 간을 뜯기고 있는 프로메테우스. 사진>구글 검색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를 분노케 한 것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것뿐만이 아니었다. 티탄족과 올림포스 신들과의 전쟁에서도 제우스편에 서지 않았고 제우스의 운명에 관한 비밀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이를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더 가혹한 처벌을 내리게 되는데 힘의 신 크라토스와 폭력의 신 비아를 시켜 프로메테우스를 카우카소스산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어 놓았다. 이어 매일 독수리를 보내 바위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파먹게 했다. 다시 돋아난 간은 다음 날 또 다시 독수리가 와서 파먹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이런 고통 속에서 삼천 년을 견뎌야만 했다. 훗날 헤라클레스가 이 바위산에서 해방시켜 주기 전까지. 그럼에도 끝내 제우스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았고 훗날 프로메테우스는 불의와 억업에 맞서는 저항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한편 프로메테우스가 미리 알고 있었던 제우스의 운명에 관한 비밀은 프로메테우스가 카우소스산 쇠사슬에서 해방된 후에야 밝혀지게 되었다. 당시 제우스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사랑에 빠져 있었는데 프로메테우스에 의하면 장차 테티스가 낳을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올림포스의 주인 제우스는 이런 프로메테우스의 예언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제우스는 테티스를 단념하고 그녀를 인간 펠레우스에게 시집보내고 말았다. 훗날 테티스와 펠레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바로 반신반인의 영웅 아킬레우스였다.


그렇다면 프로메테우스가 처음 만들었던 인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은 지금의 인류는 프로메테우스의 작품이 아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프로메테우스에게 받은 직립보행과 불이라는 선물 뿐만아니라 에피메테우스에게 받은 지적 능력 때문에 인간은 날로 오만방자해져 갔다. 안그래도 제우스에게는 인간이 눈엣가시였는데 이때다 싶어 신들을 소집해서 인간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했다. 그 방법은 홍수였다. 불은 신들의 세상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홍수 와중에 남은 이가 바로 데우칼리온과 그의 아내 퓌라였다. 설에 따라서는 데우칼리온이 프로메테우스의 아들이 되기도 하고 티탄족 동료가 되기도 한다.


살아남은 부부는 프로메테우스가 처음 창조해낸 인간을 복원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정의와 질서의 신으로 알려진 테미스를 찾아가 신탁을 듣게 된다. 테미스는'얼굴을 가리고 옷을 벗고 너희 어머니의 뼈를 등 뒤로 던져라.'라는 신탁을 내렸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탁은 늘 애매모호하다. 다행히 데우칼리온과 퓌라 부부는 현명해서 그 어머니의 뼈가 '대지의 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테미스 여신이 시킨대로 얼굴을 가리고 옷을 벗은 다음 돌을 집어 등 뒤로 던졌다. 이때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은 남자가, 퓌라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인류가 바로 이 종족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아폴론과 다프네, 월계수가 된 사랑

$
0
0

【그리스 신화】올림픽의 하이라이트는 마라톤이다. 마라톤 우승자에게는 명예와 영광의 상징인 월계관을 씌워준다. 흔히 월계관은 월계수 잎으로 만든 것으로 생각하나 고대 그리스 올림픽 제전에서는 올리브 가지를 엮어 월계관을 만들었다. 월계수 잎으로 월계관을 만들어 승리자에게 씌워준 것은 고대 그리스의 피티아 제전이었다. 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올리브 가지로 월계관을 만들었지만 그 이후 올림픽에서는 그 지역의 생태계에 맞는 식물로 월계관을 만든다고 한다. 가령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가 쓴 월계관은 참나무 가지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계관이 상징하는 명예와 승리의 의미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월계관이 이런 의미를 갖는 데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폴론Apollon과 다프네Daphne의 슬픈 사랑 속에 등장하는 것이 월계수다.

 

아폴론, 델포이의 주인이 되다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아폴론이다. 달과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Arthemis와는 쌍둥이 남매 지간이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남매가 태어나면 대단한 권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예언 때문이었다. 이 예언을 들은 헤라는 분만의 여신 에일레이티아Eileithyia를 통해 레토의 해산을 방해했다. 어쩔 수 없이 레토는 해산할 장소를 찾기 위해 이곳 저곳으로 도망다녀야만 했다. 그러던 중 오르티기아 섬에 도착해 포세이돈의 도움으로 낳은 자식이 아르테미스였다. 레토는 아르테미스를 낳고도 아흐레 동안을 더 진통을 겪었는데 물론 헤라 여신의 방해 때문이었다. 결국 이웃 섬 델로스에서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Iris의 도움으로 낳은 아들이 바로 아폴론이었다.


 ▲다프네와아폴론. 사진>구글 검색

 

역시 신은 신이다. 아폴론은 태어난 지 나흘 만에 아버지 제우스에게 황금 왕관과 현악기 리라, 백조가 끄는 마차를 받고 델포이로 떠났다. 이 델포이에는 왕뱀 피톤이 있었는데 피톤은 헤라의 명령으로 에일레이티아와 함께 레토의 해산을 방해하는 데 한 몫 했던 전력이 있었다. 아폴론은 평소 사냥에 쓰던 화살을 이용해 왕뱀 피톤을 사살했다. 이 사건 전까지만 해도 그 유명한 델포이의 신탁은 왕뱀 피톤이 자신의 어머니인 가이아 신전에서 아내 피티아를 시켜 신탁을 내리곤 했는데 이 사건으로 델포이의 신탁은 아폴론의 신탁으로 바뀌게 되었다. 아폴론은 왕뱀 피톤의 아내 피티아를 사람으로 변신시켜 신탁을 내리게 했다고 한다. 한편 아폴론은 왕뱀 피톤을 죽인 사건을 기념해 피티아 경기를 창설했다. 이 때만 해도 피티아 경기에서 승리한 자에게 씌워준 것은 너도밤나무로 만든 관이었다고 한다. 월계수로 월계관을 만들어 승리자에게 씌워준 것은 이보다 더 훗날의 어느 사건 때문이었다.

 

아폴론과 다프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월계수가 되다

 

피티아 제전의 승리자에게 씌워주던 월계관을 월계수 가지로 만든 것은 아폴론이 물의 신 페네이오스Peneus의 딸인 요정 다프네를 만난 이후의 일이었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늘 활을 들고 다니는 두 명의 신이 있다. 아폴론과 큐피드의 화살로 유명한 에로스다. 참고로 큐피드는 에로스의 로마 신화 버전에 등장하는 쿠피도의 영어식 발음이다. 늘 아이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그 큐피드가 에로스다. 이 에로스의 장난으로 아폴론은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 상대가 바로 다프네였다.

 

거대한 왕뱀 피톤을 화살로 죽인 아폴론에게 활과 화살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런데 자기 말고 어떤 어린애(에로스)가 활을 가지고 다니면서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하찮고 건방지게 보였을까? 아폴론은 활에 얽힌 자신의 과업을 자랑하며 에로스를 무시했다. 이런 아폴론에게 화가 난 에로스는 아폴론, 당신의 화살은 다른 모든 것을 맞출지 모르겠지만 내 화살은 당신을 맞출 것이요.” 하면서 두 개의 화살을 꺼냈다. 에로스는 마침 지나가던 다프네의 가슴에 화살을 쏘았고 이어서 아폴론의 가슴에도 나머지 화살을 쏘았다. 그런데 에로스의 화살에는 특별한 마법이 있었다. 촉을 금으로 만든 금화살은 애정을 일으켰고 반대로 화살촉이 납으로 된 납화살은 그것을 끝없이 거부하게 만들었다. 아폴론이 맞은 화살이 금화살이었고 다프네가 맞은 화살이 납화살이었으니 이 후의 이야기는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일방적으로 사랑을 구애하는 아폴론과 이를 거부하는 다프네 사이의 추격전이 시작된 것이다. 납화살을 맞은 다프네는 그야말로 사랑이 끔찍했다. 다프네의 미모에 이끌려 수많은 남자들이 구애를 했지만 다프네는 그저 숲속을 거닐며 사냥하는 것 빼고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폴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금화살을 맞은 아폴론은 달랐다. 세상에 보이는 것이라곤 다프네밖에 없었다. 아폴론은 델포이 신탁을 주인이면서도 자신의 운명만은 예언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만큼 에로스 화살의 위력이 대단했다는 것. 둘 사이의 쫓고 쫓기는 구애 전쟁은 끝날 줄 몰랐으니 다프네는 물의 신이자 아버지인 페네이오스게 간청했다. 계속 처녀로 살게 해 주던지 아니면 이런 상황을 만든 자신의 모습을 변신시켜 달라고.

 

페네이오스가 들어주었는지 아니면 다른 신이 들어주었는지 쫓기던 다프네의 몸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몸은 굳어지고 가슴은 부드러운 나무껍질로 덮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잎이 되고 팔은 가지가 되었으며 발은 뿌리가 되어 땅 속을 파고들었다. 얼굴은 가지 끝이 되었지만 그 미모만은 여전했다. 놀란 아폴론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가지를 포옹하고 나무에 키스를 했다. 물론 나무로 변신했음에도 다프네는 아폴론의 키스가 끔직했던지 움찔 하곤 했다. 슬픔에 빠진 아폴론은 절규하며 말했다.

 

그대와 나는 이제 결혼할 수 없게 되었지만 나는 그대를 나의 나무가 되게 할 것이요.나는 나의 왕관으로 그대를 쓸 것이고 나의 리라와 화살통을 그대의 가지로 장식할 것이요. 또한 위대한 정복자들이 개선 행진을 할 때 그들의 이마에 그대의 잎으로 엮은 관을 씌우리다. 그리고 그대의 잎은 늘 푸르도록 할 것이요.”

 

이 말을 하는 동안 다프네는 완전한 나무로 변해 있었다. 다프네가 변한 이 나무가 월계수였다. 이 사건 이후로 아폴론은 피티아 경기 승리자들에게 너도밤나무 대신 월계수 가지로 만든 월계관을 씌워주게 되었다고 한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아폴론과 카산드라, 누가 국민을 카산드라로 만드는가

$
0
0

재정 위기를 필두로 시작된 그리스 경제 위기 당시 두 명의 전직 장관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한 명은 2001년 연금 개혁안을 내놓았다가 여야 모두의 비난으로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타소스 야니치스 전 노동장관이었고 또 한 명은 야니치스 노동장관의 개혁안을 유일하게 찬성했던 알레코스 파파도풀로스 전 재무장관이었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그리스의 경제 위기를 예견하고 기득권층의 희생을 전제로 한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동료 정치인들에게 외면당하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심한 구타와 욕설까지 들어야 했다. 이들의 예견을 무시했던 그리스 정부는 경제 위기의 긴 나락으로 추락했고 세계 언론은 이 두 전직 장관을 카산드라 정치인이라고 불렀다. 비단 그리스의 이 두 정치인만 카산드라일까? 세월호 참사와 경주 지진을 겪으면서 우리나라 국민들도 카산드라 국민이 되고 말았다. 도대체 누가 우리나라 국민들을 카산드라로 만들었을까?

 

트로이의 목마를 예언한 카산드라, 그러나

 

그리스 신화 속 카산드라Cassandra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지녔지만 이 예언을 아무도 믿지 않는 운명을 지닌 인물이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카산드라 콤플렉스. 즉 예언이 맞지만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 혹은 믿고 싶지 않은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카산드라가 예언한 것은 트로이의 목마뿐만이 아니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로 인해 일어날 전쟁과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 연합군의 총지휘관이었던 아가멤논의 죽음 등을 예언했다. 문제는 아무도 카산드라의 예언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아테네 신전에서 아이아스에게 겁탈당하는 카산드라. 사진>구글 검색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프리아모스 왕과 헤카베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헬레노스Helenus와는 쌍둥이 남매지간이었다. 둘 다 예언 능력을 지녔지만 둘의 운명은 정반대였다. 헬레노스가 그리스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트로이 전쟁의 승리를 이끌 운명이었지만 카산드라는 어느 누구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아 패배의 단초(?)를 제공할 운명이었다. 트로이의 왕자인 헥토르와 파리스의 형제이기도 한 이 쌍둥이 남매가 예언 능력을 갖게 된 데는 아주 어릴 적 일이었다. 아폴론 신전에 남겨진 일이 있었는데 남매가 발견될 당시 뱀들이 아이들의 귀를 핥고 있었다고 한다. 아폴론이 누구인가? 신탁으로 유명한 델포이 신전의 주인이 아닌가. 이 남매는 이 일이 있은 후 귀가 정화되어 예언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헬레노스와 달리 카산드라는 훗날 예언 능력을 지녔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는 운명으로 바뀌었다.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한 탓이었다. 카산드라가 아폴론 신전에서 하룻밤을 보내던 날, 아폴론이 다가와 그녀를 안으려는 순간 카산드라는 완강히 거부하였고 이에 화가 난 아폴론은 카산드라의 예언에서 설득력을 빼앗고 말았다. 즉 카산드라의 예언이 맞지만 듣는 사람을 설득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여러 차례 트로이 전쟁을 예언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끝내 트로이는 그리스 연합군에게 함락되고 말았다.

 

그녀의 예언이 더욱 더 슬픈 것은 탁월한 예언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운명조차도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다.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녀의 예언대로 트로이는 멸망했고 카산드라는 아테네 신전으로 몸을 피했지만 트로이 목마 속 40명의 장수 중에 한 명인 아이아스에게 발견되어 겁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자신의 신전에서 이런 불충한 일이 발생한 데 화가 난 아테네 여신은 제우스와 포세이돈의 도움을 받아 트로이 함락 후 귀국길에 오른 아이아스의 배를 침몰시켜 버렸고 아이아스는 배와 함께 익사하고 말았다. 아이아스의 죽음으로 자유의 몸이 된 듯한 카산드라는 이후 다시 아가멤논의 차지가 되어 미케네로 가게 되는데 그녀가 예언했듯이 카산드라와 아가멤논은 아가멤논의 부인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누가 국민을 카산드라로 만드는가

 

국내 역사상 최대의 참사로 일컬어지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당시 국민들은 분노했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안전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또 다시 안전 사고는 반복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도 진상 규명은 물론이고 어떤 안전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이번 경주 지진으로 정부의 안전 불감증은 극에 달하고 말았다. 카산드라의 예언을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던 것처럼 정부와 정치권은 우리 국민들의 예견된 참사를 막아달라는 절절한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경주 지진으로 또 다시 정부와 정치권은 호들갑을 떨기 바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그랬던 것처럼 이번 경주 지진을 교훈 삼아 사회 전반에 걸쳐 제대로 된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미래의 우리 사회는 더 큰 재앙과 참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누가 국민을 카산드라로 만들고 있는가! 국민이 카산드라가 아닌 예견된 불안한 미래와 싸울 일 없는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국가와 정부, 정치권의 진정한 의무일 것이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아폴론과 히아킨토스, 너를 영원히 기억할께

$
0
0

히아신스라는 꽃이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이름이 낯설어서 그렇지 동네 꽃집을 지나치다 보면 한번쯤 보았을 그런 꽃일 수도 있다. 마치 수국처럼 보라색의 작은 꽃잎이 대여섯 장씩 붙어 있는 꽃이 히아신스이다. 때로는 투명 유리컵에 꽂아 놓아 물밑으로 보이는 하얀 수염뿌리가 보이기도 한다. 대부분의 꽃이 그렇듯이 히아신스도 꽃말이 있는데 '기억'이라고 한다. 히아신스의 꽃말이 '기억'이 된 데는 그리스 신화 속 히아킨토스Hyakintos라는 청년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태양신 아폴론의 사랑은 늘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으로 끝난다. 다프네와의 사랑이 그랬고, 카산드라와의 사랑이 그랬다. 요정이나 공주와의 사랑조차도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거늘 사내와의 사랑은 오죽 했을까 싶다. 히아킨토스가 바로 아폴론의 동성 연인 중에 한 명이다. 스파르타 근처의 아미클라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난 히아킨토스. 그에게 무슨 매력이 있었는지 아폴론은 그를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했다. 아폴론은 운동할 때도, 사냥할 때도, 산책할 때도 늘 히아킨토스를 데리고 다녔다. 오죽했으면 아폴론이 그를 만날 때면 그 좋아하던 수금 연주나 활 쏘는 것까지 잊고 지냈을까!

 

▲히아킨토스의죽음을 슬퍼하는 아폴론. 사진>구글 검색


하지만 둘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다. 어느 날 아폴론과 히아킨토스는 원반던지기 놀이를 하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원반을 주거니 받거니 여느 이성 연인 못지 않게 다정스럽고 행복한 표정으로 말이다. 했다. 이 즐거운 시간 뒤에 엄청난 슬픔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아폴론의 원반을 받던 히아킨토스가 실수로 땅에 떨어져 튀어오르던 원반에 이마를 맞고 말았다. 히아킨토스는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순간 아폴론의 심정은 굳이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신화의 또 다른 버전은 아폴론을 짝사랑했던 서풍의 신 제피로스Zephros가 일부러 바람을 일으켜 원반을 히아킨토스의 이마에 명중시켰다고 한다. 질투가 빚어낸 비극이 아니었을까. 


아폴론은 쓰러진 히아킨스를 껴안고는 통곡했다. 별의 별 치료법을 다 동원해 봤지만 아폴론이 제 아무리 뛰어난 신일지라도 죽음이라는 운명마저 바꿀 수는 없었다. 히아킨토스는 끝내 아폴론의 품안에서 숨을 거두었고 아폴론은 탄식하며 부르짖었다. "내 너와의 추억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또 너를 내 탄식이 아로새긴 꽃이 되게 하리라."아폴론의 조화였을까 땅바닥을 흐르던 히아킨토스의 피는 한 곳에 모여 꽃으로 피어났다고 한다. 이 꽃이 바로 히아신스다. 이런 연유로 히아신스의 꽃말이 '기억'이 되었다고 하며 히아신스 꽃잎에 보이는 'AIAI' 흔적은 아폴론의 탄식이라고 한다. 


히아신스에는 아폴론과 히아킨토스의 사랑 말고도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화살에 맞고 전사하자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가 그의 시체를 찾아왔다. 그리스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다른 장수들과 협의한 끝에 아킬레우스의 갑옷과 무기를 오디세우스에게 주기로 결정했다. 이에 실망한 오디세우스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양떼를 그리스군으로 착각하여 모두 죽인 뒤 전리품인 트로이 장수 헥토르의 칼로 자살했다고 한다. 이 때 오디세우스의 피가 모인 곳에 피어난 꽃이 히아신스라고 한다. 이 이야기 또한 오디세우스가 아킬레우스를 기억하고자 그의 유품을 두고 아이아스와 싸움 끝에 자살했다는 점에서 히아신스의 꽃말 '기억'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겠다.


영원히 기억하고픈 이가 있다면 히아신스 한 송이로 사랑을 표현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수이전, 여왕을 사모했던 말단관리의 운명은?

$
0
0

수이전/작자 미상(신라 시대로 추정, 57~935년)/이대형 편역/소명출판 펴냄


나무 목[木]자 둘을 합치면 수풀 림[林]자가 된다는 것은 한자 문외한이 아닌 이상 누구나 다 아는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렇다면 물 수[水]자 셋을 합치면 어떤 글자가 될까? 아니 그런 한자가 있기나 할까? 나무가 둘 모여 수풀을 이루니 물이 셋 모이면 어떤 의미일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묘[淼]자란다. 수면이 아득할 정도로 '물이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조선시대 궁궐 전각에는 화재예방을 위해 수[水]자를 새긴 육각형 은판을 봉안했다고 한다. 물론 '드므'라는 커다란 물항아리를 건물 곳곳에 배치했다고는 하나 건축물 대부분이 나무로 지어져서 한 번 불이 나면 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주술적 힘이라도 빌리려 했던 것이다. 어쨌든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불조심이긴 하나보다. 한편 신라시대에도 화재예방을 위한 이런 부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풍속에 화재를 막기 위해 다음과 같은 주문을 문과 벽에 붙였다고 한다.

 

지귀 마음에서 일어난 불이

몸을 태우고 불귀신으로 변했네

창해 밖으로 흘러 옮겨가

보이지도 말고 가까이 하지도 말지라


<수이전>에 따르면 신라인들이 이런 부적을 건물에 붙인 데는 아주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요즘말로 하면 러브스토리다. 그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 이야기가 숨어있다고 한다. 신라시대 활리의 역인에 불과했던 지귀가 마음 속에 품었던 이가 있었으니 다름아닌 선덕여왕이었다. 선덕여왕의 단아하고 수려함을 사모하여 하루가 멀다하고 근심하고 눈물을 흘려 모습이 초췌해졌는데 이 소식을 선덕여왕이 듣고 불러 말하길 '짐이 내일 영묘사에 가서 향을 피울 것이다. 너는 그 절에서 짐을 기다려라' 하였다.

 


 지귀는 다음날 영묘사 탑 아래에 가서 왕의 행차를 기다리다가 홀연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왕이 절에 도착하여 향을 피우고는 지귀가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팔찌를 빼어 지귀 가슴에 놓고 다시 궁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잠에서 깬 지귀는 가슴에 왕의 팔찌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는 왕을 기다리지 못한 자신을 한탄했다. 지귀는 그 안타까움에 오래도록 기절해 있다가 마음의 불이 일어나서 그 탑을 불태우고 말았다. 지귀가 불귀신으로 변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주술사에게 명하여 위와 같은 주문을 짓게 했다고 한다. 어떻게 일개 역졸이 왕을 사모할 수 있었을까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수이전> 제목 그대로 아주 '기이한 이야기'에 불과하니까. 다만 신분의 벽에 부딪쳐 번민해야만 했던 한 남자의 사랑이 예나 지금이나 안타깝기는 똑같다는 것이다.

 

<수이전>은 신라 사회를 배경으로 한 최초의 설화집이다. 저작 연대는 통일신라 후기로 추정되지만 현존하지는 않고 <삼국유사>, <대동운부군옥>, <해동고승전>, <필원잡기> 등에 실려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 문인 박인량이 <수이전>의 저자라는 주장도 있지만 개작의 대표적인 인물로 추정될 뿐 확실한 근거는 없다.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등에 총 13편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등장 인물도 최치원, 선덕여왕, 김유신, 원광법사에서 일반 백성들까지 다양하다. 대부분 짤막한 이야기들이지만 최치원에 관한 이야기는 '선녀홍대', '최치원전'이라는 제목으로 그 분량이 상당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선덕여왕과 모란에 관한 이야기,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 등도 모두 <수이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사랑 이야기가 많은 걸로 봐서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랑이 갖는 의미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지귀의 러브스토리만큼이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하나 더 소개하고자 한다.

 

신라시대 최항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항이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는데 부모의 반대로 끝내 만나지 못하고 갑자기 죽고 말았다. 분명 죽었건만 항은 여드레가 지난 후 머리에 석남 가지를 꽂고 여인의 집을 방문해서는 석남 가지를 나누어 주면서 부모님이 결혼을 허락하셨다며 여인과 함께 그의 집으로 돌아갔다. 항은 담을 넘어 집에 들어갔고 여인은 날이 새도록 그 집 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 때 그 집 사람이 나와 밤새 문 앞에 서있는 연유를 물으니 여인은 밤새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했다. 그 집 사람은 어이가 없었다. 팔 일 전에 죽어 장사까지 치렀는데 무슨 얘기냐고 물었다. 여인이 말하기를 석남 가지를 보여주며 항이 나누어 꽂아 주었다면서 이것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관을 열어보니 놀랍게도 최항의 시신 머리에 석남 가지가 꽂혀 있었고 옷마저 이슬에 젖어 있었다. 여인은 그때서야 항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통곡했다. 그때 항이 다시 살아나서 20년을 해로했다고 한다. 이승에서 못 이룬 사랑을 저승에서 이루었다도 아니고 다시 살아나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니 이보다 더한 해피엔딩이 있을까?


일연의 <삼국유사>가 삼국 시대의 문학 유산을 전해주고 있는 매우 소중한 문헌이듯이 <수이전>은 <삼국유사>와는 다르게 비록 사실이 아닐지언정 당시 서민들의 고단했던 일상과 꿈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이 된 피라모스와 티스베

$
0
0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인 사랑은 전세계인이 다 아는 세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영국)의 대표작 중에 하나다. 몬터규 가문과 캐풀럿 가문은 오랫동안 앙숙 관계였다. 하지만 몬터규 가문의 후계자 로미오는 친구에게 이끌려 변장한 채 참석하게 된 캐풀럿 집안의 무도회에서 캐풀럿 가문의 외동딸 줄리엣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줄리엣도 마찬가지였고 두 사람은 열렬한 사랑을 나눈 뒤 이틀 후에 결혼식까지 올린다. 캐풀럿 가문에서는 줄리엣을 패리스 백작과 결혼시키려 하고 줄리엣은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로런스 신부와 상의해 이틀 가량 가사 상태에 빠지게 되는 수면제를 복용한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로미오는 줄리엣의 죽음을 알게 되고 줄리엣 옆에서 독약을 마시고 죽는다. 얼마 후 가사 상태에서 깨어난 줄리엣은 자신의 옆에 죽어있는 로미오를 보고 칼로 자살을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세익스피어가 쓴 최초의 낭만적 비극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 피라모스Pyramus와 티스베Thisbe의 사랑 이야기를 듣는다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것이다.


뽕나무 열매가 검붉은 이유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BC43~AD17, 로마)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바빌론에 사는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서로 이웃에 살았다. 둘은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되어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두 집안은 피라모스와 티스베에게 외출 금지령을 내렸다. 왜 두 집안이 이들의 사랑을 반대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오랫동안 원수지간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따름이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식을 줄 몰랐고 담장 너머로 밀애를 나누었다고 한다. 둘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밀어를 속삭였고 담장에 대고 키스를 했다. 두 사람에게 이 담장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쉬 상상이 갈 것이다.

 

▲피라모스를따라 자살하는 티스베. 사진>구글 검색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둘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집을 떠나 평생 같이 살기로 결심하고 그날 밤 앗시리아의 왕 니누스 무덤가에 있는 뽕나무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누구든 먼저 도착하면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이윽고 밤에 되자 티스베가 먼저 아버지의 눈을 피해 집을 빠져나가 약속 장소인 뽕나무 아래 도착해 피라모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났다. 사자는 방금 전 먹이를 먹었는지 주둥이에는 피가 범벅이 된 채였다. 겁이 난 티스베는 재빨리 근처 동굴로 몸을 숨겼다. 그런데 너무 급하게 뛰어가느라 스카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사자가 그 스카프를 발견했고 피투성이가 된 주둥이로 그 스카프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얼마 후에 피라모스도 그 뽕나무 아래에 도착했다. 하지만 티스베는 보이지 않았고 피묻은 스카프만이 뽕나무 아래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곳에 사자가 자주 출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피라모스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온 티스베가 사자의 먹이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이 늦게 온 탓이라고 생각한 피라모스는 찢겨진 스카프에 입을 맞추고는 차고 있던 칼로 자신의 옆구리를 찔러 자살하고 말았다.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고 뽕나무 열매까지 붉게 물들였다. 한편 사자를 피해 동굴에 숨어있던 티스베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피라모스를 생각하며 용기를 내어 다시 그 뽕나무 밑으로 왔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곤 붉게 물든 뽕나무 열매와 그 아래에 쓰러져 있는 피라모스의 주검이었다. 티스베는 조금 전 그 사자의 짓이라고 생각하고 자신도 피라모스를 따라가겠다고 절규했다. 티스베 또한 피라모스의 칼로 자살을 했고 그 때 솟구친 피가 다시 뽕나무 열매를 물들였고 급기야 피라모스의 피로 물들었던 뽕나무 열매는 붉다 못해 검붉은 색이 되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뽕나무 열매인 오디는 하얀색이었다고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이 되다


열한 살에 입학한 그래머스쿨이 학력의 전부였던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는 <변신 이야기>와 <플루타크 영웅전>을 탐독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중에는 그리스 신화를 원형으로 한 희곡들이 많다고 한다. 앞서 살펴본 피라모스와 티스베 신화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이 되었고 <한여름 밤의 꿈>은 <플로타크 영웅전>을 참조했다고 한다. 세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인 <템페스트>도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줄거리를 따왔다고 한다. 세익스피어가 참고한 것은 그리스 신화뿐만이 아니었다. <햄릿>은 북유럽 신화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일종의 모방인 셈이다. 어쩌면 표절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세익스피어가 모방했다거나 표절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바로 그의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천재성 때문이다. 단순한 참고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의도에 맞게 주제와 구성을 재창조한 것이다. 어쨌든 세계적인 문호 세익스피어의 상상력의 원천이 신화였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작품 중에 그리스 신화를 원형으로 한 작품이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영화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를 원형으로 했고 '미녀와 야수'는 에로스와 프시케 신화를 원형으로 만들어졌다. 또 오드리 햅번 주연의 '마이 페어 레이디'도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 영국)가 피그말리온 신화를 원형으로 쓴 희곡 <피그말리온>을 영화화한 것이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뒤돌아보지마"

$
0
0

소아과 의사 크리스는 큐레이터인 아내 애니와 아들 얀 그리고 딸 마리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 부부는 얀과 마리를 교통사고로 잃게 되고 아내는 자식을 잃은 고통과 자책감에 남편 크리스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크리스는 아내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이혼에 합의하지만 4년 뒤 자신마저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비록 육체는 세상을 떠났지만 크리스의 영혼은 자식과 남편을 잃은 고통에 시름하는 애니를 떠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게 된다. 급기야 아내 애니마저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로써 남편을 따르기에 이른다.


그렇지만 저승에서 다시 남편을 만날 수 있을거라 믿었던 애니의 생각은 틀리고 말았다. 자살하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애니는 지옥으로 가게 되고 이 부부는 영혼마저도 만날 수 없는 기구한 운명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아내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크리스는 애니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위험한 모험을 떠나게 된다.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천국보다 아름다운'의 줄거리다. 이승에서의 사랑을 저승에서까지 이어가려는 이 부부의 노력이 애틋하기만 한데 한편 결코 낯설지 않은 장면이기도 하다. 신화 읽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르페우스Orpheus와 에우리디케Eurydice의 감동적이고도 슬픈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아마 이 지구상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이들만큼 서로를 사랑했던 연인이나 부부는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저승까지 갈 수 있다고 자신하면 모르겠지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부부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오르페우스와에우리디케. 사진>구글 검색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 속 최고의 가수이자 연주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집안 내력을 보면 평범한 오르페우스가 오히려 더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오르페우스는 태양의 신이자 음악의 신인 아폴론과 무사 여신 칼리오페의 아들이다. 노래와 리라의 달인이었던 아버지와 최고의 서정 시인이었던 어머니의 피가 어디 가겠는가! 한편 오르페우스의 어머니 칼리오페는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의 아홉 딸들 중 한 명이다. 무사 여신이라 불리는 제우스와 므네모시네의 아홉 딸들은 예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칼리오페는 서정시에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한편 오르페우스의 아내 에우리디케는 숲의 요정으로 어느 날 강의 요정들과 숲에서 놀던 중 아리스타이오스라는 청년과 마주쳤다. 아리스타이오스는 에우리디케의 미모에 반해 그녀에게 수작을 걸어왔다. 물론 아리스타이오스는 에우리디케가 유부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아리스타이오스의 수작에 놀란 에우리디케는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아리스타이오스를 피해 달아나던 에우리디케는 그만 풀숲에 숨어있던 독사에 물려 죽고 말았다. 참고로 아르고호의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오르페우스가 어떻게 에우리디케와 결혼하게 되었는지는 전해지는 바가 거의 없다.

 

▲오르페우스와에우리디케. 사진>구글 검색


아내를 잃은 오르페우스는 식음을 전폐하고 울기만 했다. 하지만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다시 아내를 만날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만 했다. 드디어 아내를 찾아오기 위해 직접 지하세계로 내려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수소문 끝에 펠로폰네소스 반도 끝에 있는 타이나론 곶의 동굴에 지하세계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출발했다. 하지만 지하세계 통로가 있다고 해서 모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산 사람은 절대 지하세계에 들어갈 수 없었다. 특히 스틱스 강을 건너야 했는데 이곳에는 뱃사공 카론과 머리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가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오르페우스가 누구인가 명가수이자 명연주자이다. 오르페우스는 카론과 베르케로스 앞에서 지하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리라를 연주했고 노래를 불렀다. 인간은 물론 산천초목과 생명이 없는 바위나 물까지도 감동시키던 오르페우스의 노래와 연주였다. 카론과 케르베로스도 그만 오르페우스의 연주와 노래에 넋을 잃고 지하세계로의 여행을 허락하고 말았다.

오르페우스의 연주와 노래 실력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하세계를 지키고 있는 하데스는 물론 그의 아내 페로세포네까지도 감동시켜 적막하고 차갑던 지하세계를 울음바다로 만들고 말았다. 결국 오르페우스의 연주와 노래가 끝나자 하데스는 그에게 아내를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지하세계도 마찬가진가 보다. 전제조건이 하나 있었다. 지하세계를 통과할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르페우스는 '그까짓 것'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든 오르페우스가 앞장을 서고 에우리디케가 뒤를 따르면서 지하세계에서의 탈출이 시작되었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살해당하는 오르페우스. 사진>구글 검색


하지만 삶과 죽음은 엄연히 구분이 있어야 하는 게 인간세상의 이치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지하세계에서 구출해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은 이런 인간세상의 이치가 깨지는 순간이다. 즉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지하세계 탈출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운명이자 숙명이 아니었을까. 육신은 없고 영혼만 있는 에우리디케에게 무게감이 있을 수 없었다. 앞장섰던 오르페우스는 자주 아내를 불러보기도 했지만 대답만 할뿐 어떤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기에 불안했을 것이다. 진짜로 따로오기는 오는 것일까. 인간이 늘 그렇듯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의 출구에 다 다다르자 결국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순간 에우리디케는 연기처럼 다시 지하세계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 뒤로 오르페우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혼자가 된 오르페우스는 고향 트라키아로 돌아와 술과 음악으로 슬픔을 달래며 세월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수많은 트라키아 처녀들은 오르페우스에게 끊임없는 구애를 했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일편단심 에우리디케밖에 없었다. 어느 처녀에게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반면 오르페우스에게 거절당한 트라키아 처녀들의 마음 속에는 복수심이 싹트고 있었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사단이 나고 말았다. 포도주에 취해 광란의 춤을 추던 트라키아 처녀들은 리라를 연주하고 있는 오르페우스를 발견하고는 돌세례를 퍼붓고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헤브로스 강에 버리고 말았다.

갈기갈기 찢겨 강을 떠돌던 오르페우스의 시신은 무사 여신들이 발견해서 오르페우스의 고향인 트라키아에 묻어 주었다. 또 시신과 같이 발견된 리라는 하늘의 별자리로 박아 주었다. 이것이 바로 '거문고 자리'다. 하지만 오르페우스의 머리만큼은 찾지 못했는데 헤브로스 강을 지나 바다로 흘러든 오르페우스의 머리는 레스보스 섬까지 흘러 들어갔다. 레스보스 섬 주민들은 오르페우스의 시신임을 알아채고 정성껏 매장해 주었다고 한다. 사포와 같은 뛰어난 시인이 이 섬에서 태어난 것도 오르페우스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한편 저승에서 다시 만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엘리시온에서 이승에서 못한 사랑을 다시 이어가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사랑이 너무도 가벼운 시대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사랑이 마치 트렌드인양 일회성 소모품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버리지 말아야 할 가치는 꼭 존재하는 법이 아닐까? 그런 게 사람사는 세상의 참모습은 아닐런지.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피그말리온,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
0
0

그 해 여름은 뜨거웠다. 뜨겁다 못해 온통 붉은 색으로 넘쳐났다.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붉은 색으로 채색이 되었다. 그 붉은 색은 다가올 더위마저 무색하게 할 뜨거운 함성을 담고 있었다. 2002한일월드컵은 대한민국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거대한 축제였다. 당시만 해도 붉은 악마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서포터즈는 지금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응원단의 상징이 되었다. 단순히 소원이던 월드컵 개최의 꿈이 이루어져서 뜨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국가대표 축구팀에 대한 또 다른 소망과 바람은 '꿈은 이루어진다'는 거대한 물결이 되었다. 그 꿈은 월드컵 첫 승이었다. 간절함이 하늘을 감동시켰던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4강이라는 생애 다시 못볼(?) 드라마를 직접 지켜보고 있었다. 축구팬들의 바람과 선수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일종의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였던 것이다.


피그말리온 효과란 어떤 사람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나 칭찬을 지속적으로 표현하면 그 상대는 이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실제로 그 기대대로 된다는 심리학 용어를 말한다. 피그말리온 효과란 말을 처음 들어본 독자라도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소설로 배운 적이 있을 것이다. <주홍글씨>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 미국)이 1850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이 바로 그것이다. 아마 삼사십대 아니 적어도 필자처럼 40대 독자들에게는 기억이 새록새록 하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만나겠다고 다짐하는 어니스트. 


 ▲ 조각상을 사랑한 남자 피그말리온. 사진>구글 검색


어니스트에게 첫번째로 나타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은 개리골더(Gather Gold; 금을 긁어 모으다)라는 백만장자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탐욕에 가득 차 있었다. 밝고 빛나는 '큰 바위 얼굴'과는 결코 닮을 수 없었다. 또 한 명의 '큰 바위 얼굴' 후보자는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Old Blood And Thunder; 늙은 피와 천둥)라는 장군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얼굴에서도 '큰 바위 얼굴'의 깊고 넓은 지혜와 자비심을 찾을 수는 없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된 어니스트에게 나타난 '큰 바위 얼굴' 후보는 올드 스토니 피즈(Old Stony Phiz; 늙은 바위 얼굴)라는 성공한 정치가였다. 하지만 이 사람도 '큰 바위 얼굴'처럼 장엄하고 위풍당당하며 위대한 사랑을 담은 표정을 갖고 있지 못했다.


어니스트는 끝내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노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마에는 주름이 깊게 패이고 두 뺨에도 고랑이 파였다.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내렸다. 노인이 된 어니스트 앞에 마지막으로 '큰 바위 얼굴' 후보가 나타났다. 그는 바로 시인이었다. 하지만 시인은 '나의 사상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자신은 '큰 바위 얼굴'이 될 수 없다고 고백했다. 어니스트의 간절한 소망과 바람은 이대로 끝나고 말 것인가? 마지막 후보였던 시인이 마침내 '큰 바위 얼굴'의 실체를 공개했다. 그는 바로 어니스트 자신이었다. 시인은 마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노인 어니스트를 보고는 그의 설교에는 사랑과 자애와 진실이 담겨 있다며 "어니스트야말로 큰 바위 얼굴과 똑같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랬다. '큰 바위 얼굴'에 대한 어니스트의 간절한 바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큰 바위 얼굴'의 맑은 심성을 배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피그말리온 효과'를 가장 적절하고 재미있게 표현해 주고 있다.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한 장면. 사진>다음 검색


그렇다면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용어는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그리스 신화 속 피그말리온Pygmalion이 그 주인공이다. 키프로스에서 태어난 피그말리온은 뛰어난 예술가였다. 당시 키프로스 섬 사람들은 수호신으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모시고 있었다. 하지만 섬 여자들은 아프로디테를 성심성의껏 섬기지 않았는가 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아프로디테는 자신에게 불경한 키프로스 섬 여자들에게 벌을 내렸는데 그게 바로 매춘이었다고 한다. 피그말리온은 이런 섬 여인들을 혐오한 나머지 독신을 고집했고  조각에만 몰두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피그말리온이 만든 작품 중에는 상아로 만든 여인 조각상이 하나 있었는데 피그말리온 자신의 이상형이었다. 피그말리온은 그 조각상을 밤낮으로 어루만지고 조각상의 입에 키스까지 하기도 했다. 마치 실제 여인인 것처럼.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 섬의 수호신인 아프로디테 축제일에 신에게 자신의 소원을 기도했다. 그것은 바로 조각상과 같은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조각상과 결혼할 수 있게 해달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으리라. 축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피그말리온은 여느 때처럼 조각상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순간 조각상은 서서히 살아있는 여인으로 변해갔다. 아프로디테가 그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친히 이들의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해 주었으며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에게 파포스Paphos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한편 조각상에서 실제 사람으로 변한 여인의 이름이 갈라테이아Galatea로 알려졌는데 어떤 그리스 고대 문헌에도 나오지 않으며 18세기 이후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고 한다.


이 피그말리온 신화는 1913년 영국의 극작가인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 영국)에 의해 <피그말리온>이라는 희곡으로 재탄생했다. 희곡 <피그말리온>은 1956년 <마이 페어 레이디>라는 뮤지컬로 다시 만들어졌으며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는 1964년에 같은 이름으로 오드리 햅번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피그말리온,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에로스와 프시케, 신화시대에도 고부갈등이 있었다

$
0
0

몇년 전까지 인기리에 방영됐던 TV 프로그램 중에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제목 그대로 부부간의 갈등과 불화를 다룬 드라마였다. 갈등의 종착지는 늘 가정법원이었고 매회 4주간의 숙려기간이 주어지면서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끝내 가정법원을 찾게 된 부부갈등의 시작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그 중에서도 시어머니와 며느리 즉 고부갈등은 드라마의 단골 메뉴였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속담도 있지만 고부갈등만은 칼로 무 썰듯 결코 봉합될 수 없는 미묘한 간극이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딴 여자에게 아들을 빼앗겼다는 시어머니의 상실감과 시어머니가 아닌 오로지 나만의 남자로 남아주길 원하는 며느리의 욕심은 늘 이성보다는 감성의 영역에 더 가까웠다. 그렇다면 옛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이 투영된 신화 속에서는 고부갈등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게다가 고부갈등의 원인이 아름다움에 대한 시기와 질투였다면 이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한편 아름다움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고부갈등 이전에 사랑과 결혼의 시작이기도 했다.  에로스Eros의 연인 프시케Psyche를 험난한 시험에 들게 한 에로스의 어머니 아프로디테Aphrodite가 그랬고 에로스와 프시케가 연인이 된 것도 아프로디테가 인간인 프시케의 아름다움을 질투하고 시기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 세 명의 신과 인간 사이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질투로 시작된 고부관계


아풀레이우스(Lucius Apuleius, 123~170년, 고대 로마)의 소설 <황금 당나귀>에 따르면, 어느 왕국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세 공주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막내 딸 프시케의 아름다움은 남달랐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아니 사람들은 아프로디테보다 프시케를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아프로디테에게 바쳐야 할 아름다움에 대한 경의와 찬사를 프시케에게 쏟아붓고 있었다. 아프로디테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아들 에로스를 불러 프시케가 비천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에로스가 늘 가지고 다니는 황금화살과 납화살을 이용하면 될 터였다. 프시케가 비천한 남자와 같이 있을 때 황금화살을 가슴에 꽂으면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될테니까. 


 ▲한밤중어둠 속에서만 만났던 에로스와 프시케. 사진>구글 검색


에로스는 프시케가 잠들어 있는 방에 몰래 들어갔다. 프시케가 가엾긴 했지만 어머니의 명령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에로스는 프시케를 한참 바라보다가 실수로 화살촉이 프시케의 옆구리에 닿았고 놀란 프시케는 눈을 떴다. 잠든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눈을 뜬 프시케의 자태는 그야말로 소문대로였다. 프시케의 자태에 놀란 에로스는 황금 화살촉으로 자신의 몸을 찌르고 말았다. 그리고는 재빨리 프시케의 방을 벗어났다. 하지만 황금 화살에 찔린 에로스의 가슴에는 이미 프시케에 대한 사랑이 싹트고 있었다.


에로스가 다녀간 이후에 프시케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미모를 칭송했지만 청혼한 남자들은 없었다. 그 사이 고만고만한 미모의 두 언니는 이웃 나라의 왕자들과 결혼에 성공했다. 프시케는 혼자 지내는 날이 늘어만 갔다. 보다 못한 프시케의 아버지는 아폴론의 신탁을 물어보았지만 뜻밖의 신탁을 받고 말았다. 프시케가 괴물과 결혼한다는 것이었다. 미래의 신랑, 괴물이 산꼭대기에서 기다리고 있다니 프시케의 아버지는 시름이 더 깊어만 갔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론 신탁은 결코 거스릴 수 없는 운명이었으니까. 아름다움에 효심까지 지극했던 프시케는 아버지의 고민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스스로 괴물의 아내가 되기로 결심했다. 


프시케, 에로스와 부부의 연을 맺다. 하지만 남편의 얼굴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 


프시케는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산꼭대기로 향했다. 산꼭대기에 가까워질수록 프시케의 가슴 속에는 괴물 남편에 대한 공포가 커져만 갔다. 이 때 서풍의 신 제피로스Jephyrus가 프시케를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골짜기로 옮겨 주었다. 골짜기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니 큰 궁전이 나타났다. 프시케는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갔다. 궁전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했다. 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시종도 있었고,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도 있었다. 어쨌든 이 곳에서 프시케는 신탁대로 남편을 만났다. 하지만 남편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날마다 한밤중에 들어왔다가 날이 새기 전에 돌아갔기 때문이다. 프시케는 남편의 얼굴이 궁금했지만 참아야만 했다. 남편이 절대 자신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신탁에 의하면 프시케의 남편이 괴물이었으니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괴물의정체가 에로스임을 알게 된 프시케. 사진>구글 검색


이런 날이 반복되자 프시케는 낮 시간이 무료하기만 했다. 그래서 제피로스에게 두 언니를 궁전에 초대해 달라고 부탁했고 제피로스는 곧바로 두 언니를 궁전으로 데려왔다. 두 언니는 화려한 궁전에서 살고 있는 동생이 부럽기만 했다. 급기야 프시케에게 질투를 느끼기 시작했다. 프시케의 언니들은 프시케가 아직까지 남편의 얼굴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는 프시케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오늘밤 등잔과 칼을 준비해서 숨겨두었다가 남편이 아폴론의 신탁대로 괴물이면 즉시 목을 베고 궁전을 탈출하라는 것이었다.


그날밤 프시케는 남편과 사랑을 나눈 뒤 남편이 잠이 들었을 때 숨겨두었던 등잔불을 켜고 남편을 비추어 보았다. 남편의 얼굴을 처음 본 프시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은 괴물은커녕 아름다운 얼굴에 양어깨에는 날개가 달린 에로스였기 때문이다. 프시케는 더 가까이서 남편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등잔을 에로스의 얼굴에 가까이 대려는 기름 한 방울이 에로스의 어깨에 떨어지고 말았다. 잠에서 깬 에로스는 프시케에게 원망의 말을 남기고는 순식간에 궁전을 떠나고 말았다. 프시케는 남편의 말을 믿지 않았던 자신을 원망하며 한없이 울었다. 프시케가 울음을 그쳤을 때 그녀가 있던 곳은 이미 화려한 궁전이 아니었다. 프시케는 정신을 차리고 남편을 찾아 방방곡곡을 헤메기 시작했다. 한참을 헤맨 프시케는 곡식의 신 데메테르Demeter 여신의 도움으로 에로스의 어머니인 아프로디테를 만날 수 있었고 에로스와 다시 부부의 연을 맺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프로디테는 화가 났지만 세 가지 임무를 완수하면 허락해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물론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는 임무였다.


프시케에게 주어진 세가지 임무, 이보다 더한 시집살이는 없었다.


첫번째 임무는 곡물 창고에 아무렇게나 섞여있는 보리, 밀, 기장, 콩 등을 종류별로 고르는 것이었다. 그것도 하루에 다 끝내야 했다. 프시케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불가능한 임무였다. 하지만 프시케를 지켜보고 있던 에로스가 개미들을 시켜 창고 안의 곡식들을 종류별로 골라내는 데 성공했다. 아프로디테는 아들의 도움으로 임무를 완수해낸 프시케에게 화가 치밀었지만 냉정을 찾은 뒤 두번째 임무를 내렸다. 두번째 임무는 숲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떼들의 황금털을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양떼들은 태양의 기운을 받아 날카로운 뿔과 사나운 이빨을 가지고 있어서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두번째 임무도 강의 신의 도움을 받아 완수해 냈다. 양떼들이 태양의 기운을 받지 못하도록 그늘로 보내 쉬게 한 다음 황금양털을 깎으면 되는 것이었다. 


 ▲프시케의뜻은 '나비' 또는 '영혼'이라고 한다. 사진>구글 검색


두번째 임무까지는 신들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세번째 임무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었다. 지하 세계로 내려가 하데스Hades의 아내 페르세포네Persephone에게서 화장품 상자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신들도 한번 내려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이 지하 세계인데 어찌 인간의 몸으로 가능하겠는가! 그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망연자실한 프시케는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져 저승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가 지하 세계로 내려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즉 지하 세계로 통하는 스틱스강의 카론 영감을 설득하는 방법, 지하 세계를 지키고 있는 머리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를 피하는 방법 등이었다. 다만 페르세포네가 준 상자를 가지고 오는 도중에 절대 상자를 열어보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영원하다


프시케는 목소리가 시킨대로 해서 무사히 페르세포네의 상자를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한 프시케는 그 상자 안에 든 내용물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신들은 어떤 화장품을 바를까 궁금했던 것이다. 급기야 프시케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상자를 열어보고 말았다. 하지만 그 상자에는 화장품이 아닌 잠만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내 프시케는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에로스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아니 거의 시체나 마찬가지인 프시케를 발견하고는 잠을 수습해 상자에 넣고 프시케를 깨웠다. 어쨌든 에로스의 도움이 있었지만 프시케는 세가지 임무를 완수했다. 하지만 아프로디테는 여전히 프시케가 탐탁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에로스는 제우스에게 어머니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프로디테도 신중의 신인 제우스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프로디테의 암묵적인 허락으로 에로스와 아프로디테는 정식 부부가 되었다.


아무리 아프로디테의 허락이 있긴 했지만 에로스와 프시케는 신과 인간의 관계였다.  그래서 제우스는 프시케를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으로 만들어 주었다. 영혼을 뜻하는 영어 '사이키Psyche'의 어원이 바로 그리스 신화 속 프시케다. 한편 프시케Psyche는 그리스어로 '나비'라는 뜻이기도 하다. 영혼과 나비, 나비와 영혼. 어떻게 한 단어의 뜻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하지만 나비의 탄생 과정을 보면 나비와 영혼의 관계에 대해서 고개가 끄덕여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유충에서 번데기로 번데기에서 다시 나비로 태어나는 과정이 영혼의 불멸성과 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에로스(사랑), 프시케(영혼). 불멸의 사랑에 대한 알레고리가 아닐까? 한편 에로스와 프시케가 부부의 연을 맺어 낳은 딸의 이름이 '기쁨'이라나 뭐라나!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바람둥이 제우스의 여신들① 메티스

$
0
0

우리가 흔히 아는 제우스는 올림포스의 주인으로 근엄함과 권위의 상징이다. 그런 제우스가 사실은 그리스 신화 속 최고의 바람둥이였다면 믿을 수 있을까? 부인은 물론 자식만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다. 그렇다고 제우스의 바람 상대와 자식들이 모두 생소한 이름들은 아니다. 대부분 그리스 신화 속 주인공급이자 최소한 조연급 이상은 된다. 물론 헤라 여신이 제우스의 공식적인 아내로 알려져 있지만 첫번 째 부인은 아니었다. 제우스의 첫 바람 상대는 티탄족인 메티스로 지혜와 기술과 술수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제우스는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메티스에게 구애한 끝에 바람둥이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한편 제우스가 메티스를 일방적으로 사랑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메티스, 제우스의 형제들을 구하다


크로노스는 자신도 아버지 우라노스처럼 훗날 자식에 의해 폐위당할 것이라는 가이아의 예언을 듣고 아내 레아가 자식들을 낳자마자 집어삼키는 엽기적인 행각을 일삼았다.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 사라진 자식들이 포세이돈, 하데스,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였다. 다행히 어머니 레아의 기지로 막내 제우스만은 살아남았는데 제우스가 태어나자 돌을 보자기에 싸서 남편 크로노스에게 건넸던 것이다. 레아는 여섯 자식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제우스를 아이가이온산의 깊은 숲 속으로 데려가 아말테이아라는 염소에게 맡겼다. 또 숲 속의 정령들은 칼을 부딪치고 방패를 요란하게 두드리면서 크로노스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했다. 이렇게 아말테이아와 숲 속 정령들의 보호를 받은 제우스는 무사하게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된 제우스는 신탁대로 아버지 크로노스를 폐위하고 자신이 신들의 왕이 되기로 결심했다. 제우스가 우선 해야 할 일은 크로노스가 삼킨 형들과 누이들을 찾는 일이었다. 이 때 제우스를 도왔던 신이 바로 메티스였다. 메티스는 제우스에게 구토제를 건넸다. 제우스로부터 구토제를 받은 레아는 남편 크로노스에게 술로 속여 구토제를 마시게 했다. 구토제를 술로 알고 마신 크로노스는 예전에 삼켰던 자식들과 돌을 토해냈다. 제우스가 비록 막내였지만 나머지 형제들이 태어나자마자 크로노스의 뱃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바람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제우스에게 크로노스의 후계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제우스는 메티스를 일방적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 첫 번째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낳다

 ▲아테나의탄생. 아테나가 제우스의 머리에서 완전무장한 채로 태어나는 순간 


메티스는 1세대 티탄족인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딸로 '지혜의 신'으로 불린다. 아마 헤시오도스의 언급 때문일 것이다. 헤시오도스는 그의 저서 <신들의 계보>에서 메티스를 "인간과 신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로 묘사했다. 제우스가 왜 메티스에게 그렇게 집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형제들과 누이들을 구출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고 제우스가 올림포스의 주인으로 등극하는데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이해한다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제우스의 메티스에 대한 구애는 그야말로 처절했나 보다. 그럼에도 메티스는 한 번 져줄만도 한데 왜 끝까지 제우스를 거부했을까?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메티스는 제우스의 자식을 임신하게 되었다.

집안 내력이었을까? 아버지 크로노스가 그랬듯이 제우스도 엽기적인 행각을 이어갔다. 메티스가 제우스의 자식을 임신하자 그녀를 통째로 삼켜버린 것이다. 제우스의 대를 이은 이해할 수 없는 행각은 바로 신탁 때문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탁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자 숙명이었다. 크로노스의 어머니 즉 제우스의 할머니인 가이아의 신탁은 이랬다. 제우스가 딸을 낳게 되면 그 딸은 제우스와 대등한 힘을 갖게 될 것이며,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은 제우스를 능가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권력욕에 사로잡혔다 치더라도 어떻게 자신의 자식을 임신한 아내를 삼켜버릴 수가 있을까? 신화 속에서는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다.

제우스가 메티스를 삼켜버린 후 제우스의 몸에서는 이상한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메티스가 밴 아기는 제우스의 몸 속에서 계속 자라나고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제우스는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자신의 이마를 찍어 머리를 열었다. 이 때 제우스의 갈라진 머리에서는 완전무장한 여신이 튀어나왔는데 바로 지혜의 여신 아테나였다. 즉 아테나는 제우스와 메티스 사이에서 태어난 여신이었다. 훗날 가이아의 신탁대로 아테나는 아버지 제우스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제우스를 능가한다는 아들에 관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고 있는데, 아테나를 임신한 직후 메티스를 삼켜버렸으니 또 다른 자식을 임신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제우스가 메티스를 통째로 삼켜버린 사건은 제우스에게는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강력한 힘에 메티스의 지혜까지 섭렵함으로써 진정한 신 중의 신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바람둥이 제우스의 여신들② 에우리노메

$
0
0

유럽의 예술작품 중에는 유독 미인 조각상이 많다. 그 중에서도 아프로디테(로마 신화의 비너스)가 대표적이다. 물론 아프로디테 말고도 아프로디테와 함께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될 정도로 아름다움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헤라도 있었고, 아테나도 있었지만 어쨌든 아프로디테는 두 여신과 달리 아름다움을 관장하는 여신이었으니 당연한 현상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프로디테나 헤라, 아테나 정도의 여신은 아니지만 유럽 미술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각상이 있다. 바로 삼미신, 카리테스(Charites)다. 로마 신화에서는 그라티에(Gratiae)라고도 부르는 삼미신 조각상은 서로 어깨를 만지고 있는 등 다양한 포즈로 등장한다.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삼미신, 카리테스의 이름은 각각 아글라이아(Aglaia, 빛남), 탈리아(Thalia, 꽃의 만발), 에우프로시네(Euphrosyne, 기쁨)로 제우스와 에우리노메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바람둥이 제우스의 두 번째 상대는 바로 이 삼미신, 카리테스의 어머니인 에우리노메다.


올림포스의 주인 제우스의 자식을 낳았지만 에우리노메(Eurynome)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헤시오도스의 저서 <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에우리노메는 1세대 티탄 신족인 오케아노스(Oceanus)와 테티스(Tethys)의 딸인 바다의 님프로 어떻게 제우스의 연애 상대가 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다만 카리테스와 함께 아소포스(Asopus)라는 강의 신을 낳았다는 기록만 존재할 뿐. 오히려 에우리노메와 같은 이름의 인물이 꽤 등장하는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오디세우스의 아내인 페넬로페의 시녀로서의 에우리노메가 등장하고 히기누스의 <이야기>에는 포세이돈과 벨레로폰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서 에우리노메가 등장한다. 또 로마 시대의 작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사랑을 받은 레우코토에의 아버지로서 에우리노메가 등장하기도 한다.


 ▲카리테스 조각상. 사진>구글 검색


한편 에우리노메가 창조신으로도 등장하는데 남편 오피온과 함께 올림포스의 주인이었으나 올림포스의 재배권을 놓고 크로노스와 레아 부부에게 패배해 오케아노스강에 던져졌다는 전설도 있다. 훗날 에우리노메와 오피온은 헤파이스토스의 보호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사연은 이렇다. 제우스가 메티스와 바람을 피워 아테나를 낳은 데 분개한 헤라는 혼자 임신(?)으로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그가 바로 그리스 신화의 대표적인 장인 헤파이스토스였다. 하지만 헤라의 기대와 달리 헤파이스토스는 절름발이에 그리스 신화 속 대표적인 추남이었다. 이에 분개한 헤라는 헤파이스토스를 오케아노스강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이렇게 냉정할까 싶지만 신화 속에서는 흔히 있는 일. 오케아노스강에 버려진 헤파이스토스를 숨겨주고 키워주었던 이가 바로 에우리노메와 오피온 부부였다고 한다.

에우리노메라는 이름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더 소개하자면, 태양신 헬리오스(그리스 신화 속 아폴론)를 사랑했던 그것도 일방적으로 사모했던 요정 클리티아가 있었다. 하지만 헬리오스가 사랑했던 여인은 따로 있었으니 레우코토라는 처녀였다. 이를 질투한 클리티아는 레우코토가 처녀가 아니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이 소문을 들은 레우코토의 아버지 에우리노메는 딸을 생매장시켜 버리고 만다. 아무리 수치스럽다지만 이렇게까지야. 어쨌든 레우코토가 죽었지만 여전히 헬리오스는 클리티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결국 절망한 클리티아는 무려 구일 동안 한끼도 먹지않고 헬리오스를 쳐다보다 해바라기가 되었다고 한다. 마치 미소년 나르키소스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자 몇날 몇일을 굶다 에코(Eco)가 되었다는 어느 요정의 이야기처럼. 그 요정의 이름이 바로 에코였단다.

마지막으로 다시 제우스와 에우리노메의 딸 카리테스로 되돌아가면, 카리테스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에우프로시네, 아글라이아, 탈리아에 국한되지 않는다. 각종 문헌에 따르면 삼미신으로 다양한 이름들이 등장한다. 파시테아, 에우노미아, 하르모니아, 칼레, 레테 등. 어쨌든 삼미신, 카리테스의 미모가 장난이 아니긴 했나보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질투까지 받았다고 하니 말이다. 카리테스의 미모를 질투한 아프로디테는 어느날 그리스 신화 속 대표적인 예언가인 테이레시아스를 불러 자신과 카리테스 중 누가 더 아름다운지 내기를 했다고 한다. 이 눈치없는 테이레시아스는 카리테스 중 칼레를 지목하면서 아프로디테 여신보다 더 아름답다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미모 하나로 먹고 살았던(?) 아프로디테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아프로디테는 테이레시아스를 장님으로 만들고 말았다. 신화 속에서 테이레시아스가 장님으로 등장한 것도 이 때부터라는 전설도 있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바람둥이 제우스의 여신들③ 테미스여, 대통령에게 정의를 가르쳐줘요

$
0
0

최순실 게이트? 동의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무지와 무능, 국정철학의 부재가 민간인 최순실로 하여금 국정농단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박근혜 게이트'가 맞다. 박근혜 게이트의 시작은 법보다 더 강력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게 밝혀지면서 시작되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사람들은 흔히 '국민감정법'이라고 부른다. 병역비리와 특혜입학이 그것이다. 대통령이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국정1인자'로 불렸던 최순실이 딸 정유라를 이화여자대학교에 특혜입학시킨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입학 후 단 한번도 수업을 듣지 않았는데도 문제없이 학점을 받았다는 뉴스는 대학생들과 삼포세대로 불리는 청년층은 물론 그들의 부모들에게도 엄청난 자괴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20만개의 촛불이 짧은 시간에 200만개로 늘어난 데는 정의가 실종된 사회에의 불만이 한순간에 폭발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과연 정의는 존재하는 것일까? 전세계 사법기관들 앞에 공통적으로 서 있는 저울과 칼을 든 여인의 동상은 그저 감상하기 좋은 조각품에 불과했던 것일까? 작년 말부터 시민들을 그렇게 분노케 했던 '박근혜 게이트'는 이제 그 마지막인 '탄핵 인용'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다. 


제우스, 테미스와의 결합으로 강력한 힘에 정의까지 겸비하다


분명한 것은 '저울과 칼을 든 여인'이 결국에는 정의의 실체를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 여인의 정체가 그리스 신화 속에서 정의를 상징하는 여신 테미스Themis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칼은 늘 추상같고 그녀의 저울은 늘 기울어짐이 없기에 아무리 부정한 세상이라도 희미하나마 희망의 촛불도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이런 믿음과 함께 신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테미스는 티탄족 12신 중 하나로 메티스에 이어 제우스의 두 번째 아내가 된 여신이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테미스의 부모다. 그래서인지 테미스는 가이아에 이어 델포이 신탁을 관장하는 여신이기도 했다. 훗날 델포이의 수호신은 빛의 여신 포이베를 거쳐 아폴론에게 상속되었다.


 ▲저울과 칼을 든 테미스 또는 디케. 사진>구글 검색


테미스가 정의를 상징하는 여신이 된 이유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탁, 제의 율법 등을 발명한 이가 바로 그녀이기 때문이다. 또 올림포스 신들의 회의를 소집하고 수관한 것도 그녀의 역할이었다. 제우스가 올림포스의 주인, 신 중의 신이 된 것도 강력한 힘에 테미스와의 결합으로 정의와 분별력을 장착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테미스는 또 저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영웅 아킬레우스의 탄생에도 한 몫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우스가 한창 테티스에게 빠져 있을 때 테미스는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면 아비인 제우스를 쫓아낼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델포이의 신탁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자 숙명이었다. 결국 제우스는 테티스를 포기하고 대신 인간인 펠레우스를 테티스의 남편으로 짝지어 주었다. 테티스와 펠레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바로 아킬레우스였다. 

델포이 신탁의 수호신으로서 테미스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크로노스가 신탁 때문에 자식들을 낳자마자 삼켜버리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일 때도 크로노스의 아내 레아가 마지막으로 태어난 제우스를 은신처로 보내 크로노스의 살해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도 테미스였다. 나중에 제우스는 자기보다 먼저 태어나고도 아버지인 크로노스의 뱃속에 갇혀있던 남매들을 구해냈는데 그들이 바로 포세이돈, 하데스, 헤라, 헤스티아, 데메테르였다. 또 불손한 인간을 벌하기 위해 신들이 일으킨 대홍수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이었던 데우칼리온과 피라 부부에게 다시 지상을 인간들로 채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 이도 테미스였다. 

헌재의 탄핵인용은 테미스와 디케가 들고있는 기울어지지 않는 저울의 최소한이다

제우스와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도 신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제우스와 테미스 자식들 중에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Horai 세자매와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Morai 세자매가 있는데 호라이 세자매로는 질서를 상징하는 에우노미아Eunomia, 정의를 상징하는 디케Dike, 평화를 상징하는 에이레네Eirene가 있고, 모이라이 세자매로는 운명의 실을 뽑아내는 크로토Clotho, 운명의 실을 배분하는 라케시스Lachesis, 운명의 실을 끊는 아트로포스Atropos가 있다. 한편 테미스는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를 낳았다고도 하는데 때로는 디케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어쨌든 디케는 어머니 테미스와 함께 정의를 관장하는 신으로 알려졌는데 전세계 사법기관들 앞에 서 있는 '정의의 여신상'도 누구는 테미스라고도 하고, 혹자는 디케라고 한 것도 다 이런 이유때문이다.

더불어 로마신화에서 테미스와 디케의 역할은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Justitia로 전승되는데 '정의'의 영어 표현인 'Justice'의 어원이 바로 유스티치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 나라의 대통령은 정의에 대한 개념이 전무해 보인다.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최첨단의 시대 21세기에 20세기 그것도 70년대식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에 매몰되어 있는 대통령이니 말이다. 사회를 온통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빠뜨려 놓고도 진심어린 사죄는커녕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대통령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턱 막힐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은 대놓고 헌재의 탄핵결정에 시간끌기로 일관하고 있고 대통령 자신은 소수의 지지자들만을 바라보며 그들이 자신의 탄핵을 막아줄 것으로 믿고 있다. 게다가 소위 '태극기 집회'라고 부르는 대통령 지지자들의 극우집회 참가자들은 그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탄핵을 반대하고 있다. 좌파 척결을 위한 블랙리스트가 뭐가 잘못됐냐고도 한다. 세월호 당시 대통령은 정상적인 근무와 의무를 다했다고도 한다. 심지어 박정희의 딸이니 봐주자고도 한다. 요즘은 극우집회에 성조기까지 등장했다. 도대체 전세계에 우리나라처럼 사대주의적인 극우나 보수가 있을까 싶다. 대통령이 말했던 우주의 기운이 극우집회에 등장한 성조기와 함께 미국에도 전해졌을까 취임한지 얼마나 됐다고 트럼프 대통령 탄핵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할 뿐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으며 재벌들을 겁박해 재단을 설립하고 비선실세 최순실의 이권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대통령을 헌재에서 탄핵인용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조차도 필요없을 것이다. 헌재의 탄핵인용은 테미스와 디케가 들고 있는 기울어지지 않는 저울의 최소한이다. '정의'라는 믿음 하나로 힘든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시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테미스여! 디케여! 대통령에게 정의를 가르쳐줘요.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바람둥이 제우스의 여신들④ 므네모시네, 기억의 두 얼굴

$
0
0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문장이다. 일상에서도 많이 사용하지만 개그 소재로써의 이 말은 국회 청문회의 단골손님이다. 결국에는 다양한 정황이나 물적 증거로 인해 진실이 밝혀지기는 하지만 청문회 증인 입장에서는 위증죄를 벗어나기 위해 이만한 발언은 없을 것이다. 박근혜 게이트 피의자나 증인들의 청문회나 법원, 헌법재판소 심문 과정에서 보았듯이 기억Memory은 그렇게 개인의 편의에 의해 재생되기도 하고 망각되기도 한다. 즉 필요에 의해 불러내기도 하고 왜곡시킬 수도 있는 것이 기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모든 지적 활동과 진보는 기억 능력을 토대로 발전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생명과학대사전에 따르면 기억의 사전적 의미는 인상, 지각, 관념 등을 불러 일으키는 정신기능의 총칭. 사람이나 동물이 경험한 것을 특정 형태로 저장하였다가 나중에 재생 또는 재구성하는 현상이다. 새로운 경험을 저장하는 작용, 기명된 내용이 망각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작용, 유지하고 있는 사항을 회상할 수 있는 활동을 기억의 3요소라 한다. 기억은 여러 가지로 분류되는데, 시간적 측면에서 불필요하면 잊게 되는 단기기억과 장시간, 때로는 평생 동안 유지되는 장기기억이 있다.


기억이 인류 발전의 토대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정상적인 일상을 방해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트라우마Trauma다. 외상 또는 정신적 외상이라고도 하는 트라우마는 장기기억되는 과거의 외상이나 정신적인 충격이다. 과거의 무서운 기억이 현재를 지배하는 경우다. 이렇듯 기억은 과거의 정보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마다 불러내기도 하고 특정한 상황에서 되살아나기도 하는데 사고나 시간에 의해 정보소환 능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건망증이나 기억상실, 치매가 그런 경우다. 그렇다면 '기억'이란 말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그리스 신화 속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nemosine에서 시작되었다. 건망증을 의미하는 영어 'amnesia'에서 'mne'이 바로 '기억'이라는 뜻이다. 


 ▲기억의여신, 므네모시네mnemosyne. 사진>구글 검색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따르면 므네모시네는 가이아와 우라노스 사이에서 태어난 12명의 티탄 중에 한 명이다. 가이아와 우라노스는 12명의 티탄족 외에도 폰토스와 키클로페스 삼형제, 헤카톤테이르 삼형제의 부모이기도 하다. 참고로 티탄족에는 6명의 남신과 6명의 여신이 있는데 므네모시네를 비롯해서 오케아노스, 코이오스, 크리오스, 히페리온, 이아페토스, 크로노스, 테이아, 레아, 테미스, 포이베, 테티스 등이 그들이다.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므네모시네가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딸이라고도 한다.


므네모시네는 저승에서 기억의 연못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죽은 사람이 환생할 때 므네모시네의 물을 마시면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반대로 저승에는 레테의 물도 있는데 므네모시네의 물과 달리 레테의 물을 마시면 전생의 기억을 모두 잃게 된다. 흔히 '레테의 강을 건넜다'고 할 때는 죽어서 전생의 기억을 잃고 이승과의 연을 완전히 끊었다는 의미다. 또 트로포니오스 신전 앞에는 레테의 샘물과 므네모시네의 샘물이 흐르는데 이 물을 차례로 마시면 이전의 기억은 모두 지우고(레테의 샘물) 신탁은 기억하게(므네모시네의 샘물) 된다고 한다. 


 9명의 뮤즈, 무사이muses. 사진>구글 검색

 


그리스 신화에서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의 존재는 9명의 뮤즈 즉 무사이Muses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박물관을 의미하는 영어 Musium이나 음악을 의미하는 Music의 어원이 된 무사이 여신들의 아버지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람둥이 난봉꾼 제우스다. 제우스가 힘과 지혜에 이어 드디어 지적 능력까지 얻게 된 셈이다. 사실 신들의 계보로 따지면 제우스는 므네모시네의 조카에 해당한다. 므네모시네가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와 남매지간이기 때문이다. 제우스와 므네모시네가 부부의 연을 맺게 된 데는 기간토마키아Giganthomachia라는 신들의 전쟁과 관련이 있다.


제우스가 거인들 즉 기간테스와 싸운 전쟁을 '기간토마키아'라고 하는데 기간테스는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에 의해 잘린 제우스의 할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에서 흘러내린 피가 땅에 떨어져 태어난 거인들이다. 즉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자식들인 셈이다. 기간토마키아는 제우스가 아버지 크로노스를 제압하고 올림포스의 주인이 된 뒤에 그에게 대항했던 티탄족(제우스의 삼촌과 고모들)을 지옥에 가둠으로써 시작되었다. 제우스의 패륜에 화가 난 가이아가 기간테스를 부추겨 올림포스 신들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기간토마키아는 올림포스 신들의 승리로 끝이 났는데 제우스는 승리의 축가를 만들의 그 기쁨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했다. 그래서 기간토마키아에서 제우스 편에 서서 그 때의 상황을 기억하고 있던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가 필요했다. 제우스와 므네모시네는 올림포스 산 동쪽에 있는 피에리아에서 9일 밤낮을 관계해 9명의 무사, 무사이를 낳았다.


9명의 무사이는 기억에 기반한 지적 활동을 관장하는 여신들이다. 9명의 무사이가 관장하는 각각의 지적 활동을 보면 칼리오페Calliope는 서사시, 클리오Clio는 역사, 에우테르페Euterpe는 서정시, 탈리아Thalia는 희극과 전원시, 멜포메네Meipomene는 비극, 테르프시코레Terpsichore는 합창가무, 에라토Erato는 독창, 폴리힘니아Polyhymnia는 찬가, 우라니아Urania는 천문을 담당했다. 9명의 뮤즈들 중에서도 칼리오페는 그리스 신화 최고의 음악가인 오르페우스의 어머니였고, 클리오는 히아킨토스의 어머니가 되었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바람둥이 제우스의 여신들⑤ 이오, 질투였을까? 복수였을까?

$
0
0

욕하면서도 본다는 게 막장 드라마다. 여기서 막장이란 광산이나 탄광의 갱도 끝에 있는 채굴이나 굴진 작업장을 말한다. 즉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곳이다. 고로 막장 드라마는 시쳇말로 갈 데까지 간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시청 중에도 자연스레 욕이 나올 수밖에 없는 설정들이지만 막장의 중독성이 얼마나 강한지 단 하루라도 건너뛰면 궁금해 죽을 지경인 것이 막장 드라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의 욕망은 헌신짝 버리듯 무시하는 게 막장 드라마의 주된 흐름이다. 갈 데까지 간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소재를 동원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막장 드라마의 종결자로 불륜만한 게 없다. 늘 결말은 해피엔딩이지만 막을 내리는 그 순간까지 조강지처나 팔불출 남편은 가련하고 불쌍하다. 복수는 꿈도 못꾸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결론 장면에 이르러서는 그 응징 장면도 얼토당토하지 않지만 게다가 뻔한 결말이지만 시청자는 마음 조이며 보는 게 막장 드라마의 매력(?)이다. 불륜을 소재로 한 막장 드라마는 신화 속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올림포스의 주인 제우스의 불륜 이야기는 그야말로 끝이 없다. 또 하나 추가되는 난봉꾼·바람둥이 제우스의 불륜 행각. 이번 상대는 이오Io다.


이오는 강의 신 이나코스Inachos의 딸이었다. 제우스가 천상에서 내려다본 이오의 얼굴은 신화 속 미스 그리스였던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에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인간이건 신이건 여자만 보면 추근대야 직성이 풀리는 제우스였으니 미모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제우스야 신 중의 신이었으니 딱히 불륜에 대한 응징을 받을 일이 없었겠지만 그 상대였는던 이오에게는 크나큰 불행의 시작일 수 밖에 없었다. 가련한 이오의 불행은 제우스의 정실부인 헤라의 육감에서부터 시작됐다.

 ▲암소로 변한 이오. 사진>구글 검색


헤라는 어느 날 주위가 어둑어둑해지는 것을 보고는 육감적으로 남편 제우스가 뭔가 캥기는 게 있어 구름을 일으킨 것이라고 판단했다. 여자의 육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헤라가 구름을 헤치고 지상을 내려다보니 제우스가 강가에서 암소 한 마리와 서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자의 육감은 확실했다. 제우스는 이오와 사랑을 하다가 헤라가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재빨리 이오를 암소로 변하게 한 것이다.

강가로 내려간 헤라는 남편에게 다가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암소가 아름답다며 자기에게 선물로 그 암소를 달라고 했다. 제우스는 난감했다. 자기 애인을 아내의 손에 건네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하찮은 암소 한 마리를 달라는 데 안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불륜 행각이 들키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어 암소를 헤라에게 선물로 주었다. 이 때 제우스의 마음은 어땠을까?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기분 그대로였을 것이다.

헤라는 남편에게서 선물로 받은 암소가 여자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헤라는 눈이 백 개나 달린 괴물 아르고스에게 암소를 보내 감시하도록 했다. 암소로 변한 이오는 살려달라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와 언니들을 봐도 말을 할 수가 없으니 자기 딸이나 동생으로 알아보지도 못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암소를 보고는 풀을 먹이려 하자 말을 할 수 없었던 이오는 발굽으로 'Io'라는 글자를 땅바닥에 새겼다. 급기야 아버지 이나코스는 그 암소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딸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울부짖었다. 그러나 이내 아르코스가 와서는 이오를 끌고가 버렸으니 아버지 이나코스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였을 것이다.  

제우스는 이런 상황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를 시켜 이오를 구하도록 했다. 지상에 내려가 양치기로 변신한 헤르메스는 피리를 불며 돌아다녔다. 헤르메스의 피리 소리가 얼마나 구구절절했는지 아르고스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헤르메스는 이 때다 싶어 슬픈 곡조로 아르고스를 잠재워 보려 했지만 백 개의 눈 중에 늘 한두 개는 뜨고 있는 터라 이오를 구할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헤르메스는 자신이 불고 있는 피리[쉬링크스, 판의 피리]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찌 된 일인지 아무리 애달픈 곡조를 불러도 자지 않던 아르고스 백 개의 눈이 스르르 잠긴 것이다. 헤르메스는 이때다 싶어 아르고스의 목을 잘라 절벽 아래로 던져 버렸다. 훗날 헤라는 아르고스의 눈을 자신의 상징인 공작의 꼬리에 달아주었다고 한다. 이 때부터 공작의 꼬리가 그렇게 화려했던 모양이다.

암소, 이오를 감시하던 아르고스가 죽었다고 해서 헤라의 복수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헤라는 등에 한 마리를 보내 이오를 괴롭혔다. 이오는 등에를 피해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바다를 건너기도 했고 평야를 헤매기도 했고 산을 오르기도 했고 해협을 건너기도 했다. 이 때 암소 이오가 건넜던 바다는 이오니아해가 되었고 해협은 보스포로스[암소의 나루]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막장 드라마라도 결말은 해피엔딩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애인 이오가 너무 가여웠던 제우스는 헤라에게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는 다시는 이오를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헤라도 자신의 복수극이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제우스의 약속을 받아들이고는 이오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대해 찬성했다. 드디어 이오는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고 아버지와 자매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알다시피 제우스와 헤라의 로마 신화 이름은 주피터Jupiter와 주노Juno다. 오늘날 태양계 행성 중에서 가장 큰 목성을 주피터라고 부른다. 또 목성의 위성 중에는 이오가 있다고 한다. 한편 미우주항공국(NASA)의 목성 탐사선 이름이 주노라고 하니 그리스 신화의 미래 버전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신화 속 그대로 목성 탐사선 주노(헤라)는 남편 주피터(제우스)와 한때의 연인 이오(목성의 위성)가 다시 바람을 피우는지 감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질투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한 복수가 아직도 진행중이라니 재밌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서왕모가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지 않은 이유

$
0
0

어릴 적 코미디 프로 중에 ‘김 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삼천갑자동방삭...’이란 유행어가 있었다. '동방삭' 뒤로도 숨을 몇 번이나 헐떡이며 읊을 정도로 긴 글자가 나열되면서 웃음을 자아냈다김씨 성에 수한무로 시작되는 어느 양반 자제의 이름이었다집안 내력이 오래 살지 못한 탓에 무병장수 하라는 의미로 지어준 이름인데 오래 산다는 동식물은 죄다 끌어모아 이름에 넣은 것이다. 그렇다면 삼천갑자동방삭은 무병장수와 무슨 연관이 있길래 이름에 넣었을까? 삼천갑자면 60년의 3천배이니 18만년이 된다. 18만년간 살았다는 동방삭 설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품성으로 유명했던 동방삭이 저승사자를 꾀어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전설인데 서왕모의 반도(먹으면 영생을 누린다는 복숭아)를 훔쳐 먹어서 오래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중국 고전<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고 보면 동양에는 복숭아 관련 옛날 이야기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반도뿐만 아니라 도원결의라고 해서<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가 의형제를 맺은 곳도 복숭아밭이요, 안평대군이 낙원에서 놀던 꿈을 그린 그림 또한 그 배경이 복숭아밭인 안견의 몽유도원도이다. 호도도 오랑캐 복숭아란 뜻의 호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고 발목 양쪽의 툭 튀어나온 동그란 뼈도 복숭아뼈라고 하는 걸 보면 복숭아는 동양을 상징을 상징하는 과일임에는 틀림없다. 한편 서양에서는 유독 사과 관련 이야기들이 많다.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던진 황금사과였다고 하고<백설공주>의 독이 든 사과뿐만 아니라 뉴턴의 만유인력법칙도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발견했다고 하니 동양의 복숭아에 비견될만한 것이 서양의 사과가 아닐까 싶다. 또 영국 속담에 하루에 사과 하나를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고 했으니 중국신화에 등장한 서왕모의 복숭아처럼 무병장수에 대한 인간의 꿈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영원한 화두임에 틀림없다.


 ▲서왕모. 사진>구글 검색


서왕모(西王母)는 중국 서쪽 곤륜산에 살고 있다는 최고의 여신이다. 말 그대로 세상의 서쪽을 의미한다. 즉 해가 지는 곳, 죽음의 신이 서왕모였다. 그리스 신화의 하데스 쯤으로 생각하면 될 듯 하다. 하지만 중국신화에서 서왕모는 그리스 신화의 하데스와는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정체성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서왕모가 처음으로 언급된<산해경>에는 서왕모의 모습이 흉측하기 짝이 없었다. 표범의 꼬리와 호랑이의 이빨을 가졌고 헝클어진 머리에 비녀를 꼽고 있었으니 거의 맹수에 가까운 반인반수였다. 게다가 휘파람 부는 것이 취미였다고 하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권위 있는 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편 이런 서왕모의 시중꾼이 파랑새(靑鳥)였다니 조금은 의외다 싶다. 하지만 한나라 때 와서는 죽음을 관장한다면 반대로 영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불사의 여신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는 외모 또한 절세미인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서왕모가 불사의 여신으로 자리잡으면서 것이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는 복숭아, 반도(蟠桃). 한편 곤륜산의 서왕모 궁전은 사방이 천리에 달했다고 한다. 궁전 왼쪽에는 요지(瑤池)라는 호수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취천(翠川)이라는 강이 있었으며 곤륜산 아래에는 약수(弱水)라는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특히 약수를 건널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용뿐이었다고 한다. ‘반도원이라는 복숭아 과수원도 곤륜산에 있었는데 서왕모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먹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가 그리 철저하지는 못했나 보다. 동방삭이나 손오공이 반도를 따먹었다고 하니 말이다.


 ▲반도원에서 사과를 훔쳐먹는 손오공. 사진>구글 검색


손오공이 등장하는 <서유기>에 따르면 서왕모가 관리하는 반도원에는 총 36백 그루의 복숭아 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각각 천2백 그루씩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맨 앞쪽 천2백 그루 반도는 3천년에 한번 열매가 열리고 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중앙에 있는 천2백 그루 반도는 6천년에 한번 열리는데 먹으면 불로장생하면서 날아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맨 끝의 천2백 그루 반도는 9천년에 한번 열매가 열리고 먹으면 달이나 태양만큼 오래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인간의 버릴 수 없는 영생의 꿈은 서왕모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들의 설화 속에도 오롯이 담겨 있다. 춘추전국시대 목왕(?~B.C 621)은 곤륜산 부근을 지나가다 서왕모의 부름을 받았다. 서왕모는 목왕을 위해 연회를 베풀었는데 목왕은 너무도 행복한 시간을 보낸 탓에 인간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잊은 나머지 자신의 나라가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천계의 하루는 인간 세상의 1년에 해당한다. 서왕모는 목왕이 돌아갈 때 불로장생의 비법을 알고 싶으면 다시 방문하라고 했지만 이후 목왕은 두 번 다시 서왕모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한나라 무제(B.C 156~B.C 87)도 서왕모를 만났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무제가 불로장생을 염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서왕모는 B.C 11077일 무제를 찾아갔는데 이 자리에서 무제는 불로장생의 비법을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무제는 보통의 인간처럼 일흔 살 정도밖에 살지 못했다. 서왕모의 충고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왕모는 반도를 주면서 그 동안 무제가 잔혹한 일과 전쟁을 일삼아 왔다면서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 영생할 수 없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무제는 서왕모를 만난 이후에도 무절제하고 방탕한 생활을 즐겼을 뿐만 아니라 전쟁을 일삼았다.반도를 네 개나 먹었음에도 무제가 영생할 수 없는 이유였다.


브라운 세카르(Brown Edouard Séquard, 1817~1894, 프랑스)라는 과학자가 있었다. 파리대학 생리학 교수였던 세카르는 척수반측절단에 의해 동측의 운동마비와 반대측의 지각마비를 일으킨다는 것, 교감신경절단으로 혈관의 마비확장을 일으킨다는 것, 부신적출동물은 부신기능 탈락으로 인해 사망한다는 것, 집토끼 고환추출액주사에 의해 전신작업능력을 항진한다는 사실(네이버 지식백과 인용)을 밝혀내는 등 신진대사 연구에 기여했지만 또 하나의 엉뚱한 연구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기니피그와 개의 고환을 으깬 체액을 주입하면 회춘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영생의 꿈은 인류의 보편적인 바람이고 희망이다.


한무제가 서왕모의 충고대로 금욕생활과 함께 전쟁을 멈추었다고 해서 영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늘 행동을 조심하고 덕을 쌓으면서 살라는 신화의 메타포일 뿐이다. 어쩌면 영생이 아닌 인간의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간절한 꿈인 무병장수의 길이 바로 서왕모 신화의 메타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페르딕스, 자고새가 된 발명 천재

$
0
0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54, 영국)이라는 천재 수학자가 있었다. 튜링은 케임브리지대 연구원이던 1937년 오늘날 컴퓨터의 기본 윈리를 구현한 튜링기계라는 연산장치를 고안해 냈다. 뿐만 아니라 튜링은 2차 세계대전의 전황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독일 나치의 암호기계 이니그마해독에 나서 튜링붐베라는 암호해독기를 개발해 독일군 잠수함 부대의 이동경로를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천재의 말로는 비참하기 그지 없었다. 집에 도둑이 든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는 과정에서 튜링이 동성애자임이 밝혀진 것이다. 튜링은 성 문란 혐의로 기소되었고 법원에서 화학적 거세 판결을 받고 대학에서 쫓겨난 뒤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먹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애플사의 로고로 유명한 베어먹은 사과도 튜링의 사과에서 착안했다는 말도 있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최근에 영국 정부가 공식으로 앨런 튜링에게 사과하기도 했지만 적지 않은 천재들의 삶이 드라마틱하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미지의 세계이기도 하다. 신화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이달로스Daedalus는 그리스 신화의 공인된 천재다. 제우스의 번개와, 포세이돈의 삼지창, 아테나의 방패인 아이기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활과 화살을 만든 헤파이스토스의 후손이기도 하다. 다이달로스 하면 뭐니뭐니해도 미노스 왕을 위해 만든 미궁일 것이다. 한번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는 미궁은 요즘은 놀이공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고대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만이 그의 연인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을 보면 획기적인 발명임에는 틀림없다.


 ▲조카 페르딕스를 밀어 떨어뜨리는 다이달로스. 사진>구글 검색


천재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나 보다. 미노스 왕은 미궁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설에 의하면 다이달로스가  아리아드네에게 미궁을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 죄를 묻기 위해 다이달로스를 그의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미궁에 가두고 말았다. 다이달로스가 누구인가? 미궁을 발명한 장본인이 아닌가!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아들과 함께 미궁을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천재의 삶이란 왜 이리도 험난한 것일까. 아카루스는 태양 가까이 너무 높이 날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어기고 그만 바다에 추락해 죽고 만다. 


다이달로스의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인성만큼은 그리 내세울 게 없었던 것 같다. 아니 그의 오만함은 거의 패륜 수준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살인미수범이었으니 말이다. 다이달로스에게는 페르딕스Perdix라는 조카가 있었다. 다이달로스 누이의 열두 살 된 아들 페르딕스는 헤파이스의 후손, 다이달로스의 조카답게 발명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물고기의 등뼈를 보고 날카로운 쇠날에 이를 내어 톱을 발명했고, 길이가 똑 같은 쇠막대기의 한쪽을 고정시켜 원을 그릴 수 있는 컴퍼스를 발명했다고 한다. 


다이달로스는 이런 조카가 탐탁스러울 리 없었다. 자신만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조카의 재능 또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조카의 재능을 질투할 수 있을까. 결국 다이달로스는 조카 페르딕스를 아크로폴리스의 벼랑 아래로 밀어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행히 아테나의 도움으로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는데 아테나는 페르딕스의 몸에 깃털이 돋게 해서 새로 변신시켰다고 한다. 이 새가 꿩과의 일종인 자고새Partridge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자고새가 그리 익숙한 새는 아닐 것이다. 예전에 정글 리얼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는데 쉽게 사냥해서 먹을 수 있을 만큼 그리 높게 날지도 않고 개방된 산림 지대에서 사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예민하고 경계심이 강해 침입자가 나타나면 매우 민첩하게 풀 숲 사이로 몸을 숨긴다고 한다. 아마도 옛 기억 때문이 아닐까? 삼촌에 의해 높은 곳에서 떠밀렸던 경험이 있어서 높이 날지도 못하고 바위 틈에 둥지를 트는 게 아닐런지. 또한 믿었던 삼촌에게 당했으니 경계심이 강할 수밖에. 믿거나 말거나 신화 속 이야기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천재는 타고난다. 하지만 다이달로스 신화를 보면 그 인성까지도 타고나지는 않는 것 같다. 삼촌 다이달로스에 의해 불행한 최후를 맞지 않았다면 또 다른 그리스 신화의 천재였던 페르딕스의 삶은 어땠을까? 설마 피는 못 속인다고 삼촌 다이달로스를 닮지 않았을 것으로 믿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 아닐까?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오이디푸스 왕과 박근혜

$
0
0


오이디푸스 왕/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6~B.C 406, 그리스지음/황문수 옮김/범우사 펴냄


2017310일은 현재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결코 잊지 못할 날로 기억될 것이다. 헌법재판소 이정미 재판관이 말한 이 한 문장 때문이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 되었다. 촛불 민심의 승리라고들 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박근혜 탄핵은 민주주의의 승리이자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이었다. 대통령도 헌법을 지키지 않으면 탄핵될 수 있다는 것을 눈 앞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헌정사의 치욕적인 사건임을 부인할 수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대다수 시민들의 기대와 달리 사저로 복귀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이 대신 낭독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탄핵 불복을 선언했다. 국정농단에 대한 진솔한 사과를 바랬던 국민들로서는 또 다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게 주어졌던 소명을 다하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결과는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반성할 줄 모르는 권력의 오만함, 닮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불복 선언을 지켜보면서 문득 떠오른 대사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6~406)가 쓴 희곡 <오이디푸스 왕>의 한 대목이었다.


"아폴론이다. 친구여, 나의 불행, 이 쓰라리고 쓰라린 불행을 일으킨 건 아폴론이다. 그러나 내 눈을 찌른 건 내 손. 이 불쌍한 놈의 손이다! 내 눈은 즐거운 일은 하나도 보여주지 않거늘 무엇 때문에 보아야 한단 말이냐?" -<오이디푸스 왕> 중에서-


주인공 오이디푸스 왕은 자신의 범죄와 패륜이 밝혀지자 끔찍하게도 자신의 눈을 찌르는 방식으로 자기 처형을 감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 왕의 대사에는 반성할 줄 모르는 권력의 오만함이 짙게 깔려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저 복귀 후 밝혔던 대국민 메세지처럼 말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결혼해 자식까지 낳은 범죄에 패륜까지 저질렀음에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보다는 이 모든 게 아폴론 신탁 때문이라며 항변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엮였다'거나 '기획된 음모'라며 끝까지 진실을 거부했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오이디푸스 왕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까지도 그야말로 닮음꼴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테바이의 오이디푸스 궁전 앞에서 탄원하는 백성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희곡 전체의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그리스 신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오이디푸스 왕>은 신화에 근거하고 있지만 신화 전체 내용을 평면적으로 나열하지는 않는다. 희곡이 시작되는 전 과정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아테네 북쪽에 위치한 테바이라는 도시국가에 라이오스라는 왕이 살았다. 라이오스 왕은 이오카스테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태어난 아들에게 이름도 지어주기 전에 끔찍한 아폴론의 신탁을 듣게 된다. 알다시피 그리스 신화에서 스틱스 강에 맹세하는 것과 아폴론의 신탁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다. 아폴론 신탁에 따르면 라이오스 왕과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장차 성장해 어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운명이었다.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는 불행의 씨앗을 막기 위해 아들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차마 아들을 죽일 수는 없었던지 부부는 아들의 양 발목을 밧줄로 꿰어 목동에게 맡기고는 산 속에 버리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목동도 아이가 산 속에서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목동은 아이를 이웃나라 코린토스의 목동에게 맡기고 테바이가 아닌 곳에서 키워달라고 부탁한다. 



결국아이는 코린토스 왕 폴리보스의 양자가 되고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양 발목이 밧줄에 꿰어 '부은 발'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물론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폴리보스 왕의 양자라는 사실을 모른 채 청년으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오이디푸스 또한 친아버지와 똑같은 신탁을 듣게 된다.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할 것이라는. 오이디푸스는 이 신탁이 실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코린토스를 떠나고 이리저리 방황하던 중 테바이로 가는 세 갈래 길에서 마차에 탄 노인과 그 수행원들을 죽이게 된다. 이 노인이 다름아닌 오이디푸스의 친아버지 라이오스 왕이었다. 라이오스 왕은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가차없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을 퇴치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델포이로 가는 중이었다.


아버지를 죽인 오이디푸스, 박정희 신화의 막을 내린 박근혜


이 사건 이후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에 도착하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바이의 왕으로 추대된다.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의 아내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결혼을 하고 아들 둘과 딸 둘을 낳았다. 오이디푸스가 왕이 된 이후 테바이는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신들은 오이디푸스의 범죄를 묵과할 수 없었다. 신들의 저주로 테바이에는 역병과 기아가 돌았고 모든 백성들이 고통으로 신음했다. <오이디푸스 왕>은 오이디푸스 궁전 앞에서 탄원하는 백성들 앞에 등장한 오이디푸스 왕의 대사로 시작된다.


신들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하나의 방법밖에는 없다. 라이오스 왕의 살해범을 밝히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백성들 앞에서 당당히 선언한다. 백성들이 원하는 무슨 청이든 다 들어주겠노라고. 아폴론 신탁에 의하면 라이오스 왕의 살해범을 밝히고 테바이에서 추방하는 것만이 역병과 기아를 퇴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와 세 갈래 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의 등장으로 라이오스 왕 살해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이디푸스 왕은 자신의 결백함에 대해 지나친 오만한 자세로 일관한다. 오히려 처남인 크레온이 테이레시아스를 부추겨 자신을 추방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이오카스테 왕비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의 범인이 자신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의 오만에 찬 한 마디.


"은밀히 나를 배반하는 자가 재빨리 움직일 때에는 나도 재빨리 대책을 세워야 하는 법이다. 가만히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으면 그는 목적을 이루고, 나는 망할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 중에서-


특검과 헌재가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의 증거가 넘쳐나는데도 부인으로 일관했고 되려 음모론을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응을 두고 혹자는 성장기 청와대에서 고립된 생활을 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이십 년 가까이 지속된 은둔생활로 상황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석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기 확신에 대한 오만함은 탄핵 이후에도 변하지 않고 있다.


진실은 늘 구름 위에 있다고 했다. 구름이 걷히면 언젠가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진실이다. 오이디푸스 왕의 범죄와 패륜이 그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사건이 그랬다. 하지만 실체를 드러낸 진실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문학 장르로써의 비극은 '공포와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켜 감정의 정화(카타르시스, Catharsis)'를 도모한다고 했다. 물론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이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성취감을 제공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오이디푸스 왕이 실제로 아버지를 살해했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박정희 신화라는 왜곡된 현실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비극은 비극이다. 비극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을 기꺼이 져야 할 것이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코요테가 은하수를 만들었다?

$
0
0

제우스의 바람기는 20명이 넘는 여신들로부터 수많은 자식들을 낳은 것으로 볼 때 현실과 신화를 통틀어 역대급이라고 할 수 있다. 아테나, 아폴론, 헤파이스토스, 헤르메스 등 이후 헤아릴 수 없는 신들이 모두 어미만 다른 제우스의 자식이었다. 제우스의 바람기는 여신에서 그치지 않았다. 인간이었던 알크메네까지 유혹해 그 유명한 헤라클레스를 낳았다. 제우스의 바람기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정실 부인이었던 헤라의 심정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헤라가 신화 속에서 괜히 악처가 아니었다.

 

어쨌든 제우스의 아내이자 최고의 여신인 헤라는 헤라클레스가 예뻐 보일 리 없었다. 제우스 또한 헤라클레스에 대한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인간의 몸에서 태어난 탓에 다른 신들처럼 영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제우스는 헤라가 잠든 사이에 헤라클레스가 헤라의 젖을 빨도록 했다. 누구든 헤라의 젖을 먹으면 절대 죽지 않는 불사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태어날 때부터 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젖을 빠는 힘 또한 엄청났던 모양이다. 헤라는 헤라클레스가 젖을 빠는 힘에 놀라 잠에서 깼고 아기를 힘껏 밀쳐냈다. 이때 헤라에게서 나온 젖이 멈추지 않고 사방으로 퍼져 은하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를 한 두 번만 읽어본 독자라면 결코 잊혀지지 않는 은하수 생성에 관한 신화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은하수를 영어로 밀키 웨이(Milky Way)라고 하는 모양이다.

 

 ▲나바호 족과 코요테. 사진>구글 검색


신화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독자라도 이정도 이야기라면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은하수를 코요테가 만들었다고 하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것이다. 물론 신화는 말도 안 되는 아니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런데도 신화를 읽는 이유는 그런 황당무계한 이야기 속에 메타포(은유)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코요테(Coyote)는 알래스카에서 중앙 아메리카에 걸쳐 서식하는 육식 동물로 몸집은 작지만 오래 전부터 인간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북미 신화에서는 코요테가 어엿한 신으로 등장한다. 특히 북아메리카 서부에 사는 나바호 족들에게는 인간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동물들을 숭배하는 경향이 강했다. 신화 속에 많은 동물들이 때로는 신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북미 신화에서는 은하수가 어떻게 생성되었을까? 코요테가 어떻게 은하수를 창조했을까?

 

북미 신화, 나바호 족 신화에 따르면 세상이 창조되었을 때 많은 신들이 계절과 관련해서합리적인 순서에 따라 하늘에 별들을 배치하고 있던 검은 신(Black God)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코요테는 창조 과정이 더디게 진행되자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코요테는 화를 내며 마이이오(Ma’iio)라고 부르는 붉은 별을 선택했다. 코요테는 자신을 상징하기 위해 이 붉은 별을 남쪽 하늘에 배치했다. 마이이오(Ma’iio)는 종종 코요테를 부르는 이름으로 배회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바호 족 신화 속 붉은 별의 정체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신화에 따르면 일년 중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나타나며 재앙을 예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코요테는 검은 신의 작업 속도를 참지 못하고 남은 별이 담긴 자루를 움켜쥐더니 단번에 자신의 머리 위로 던져버렸는데 그것이 은하수가 되었다고 한다. 코요테가 뿌린 별들은 무질서하게 배치 되었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별 이름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냥 은하수로 부른다는 것이다.

 

나바호 족 신화에는 코요테에 관한 다른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는데 코요테는 나바호 족신화의 대표적인 트릭스터(Trickster, 신화 등의 이야기에서 신과 자연계의 질서를 깨고 장난을 좋아하는 장난꾸러기 인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이용했다. 즉 코요테는 자신을 영웅으로 변신시키고 인간 여인과 잔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코요테의 아내가 된 여인은 그의 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딸에게서 코요테 냄새가 나자 모녀가 코요테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코요테한테서 나는 특유의 고약한 냄새 때문이었다.

 

또 다른 나바호 족 신화에서 코요테는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코요테는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를 지키고 있던 거인 그레이 빅 예이(Gray Big Ye’i)를 죽였다. 하지만 여자는 코요테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여자는 네 번에 걸쳐 코요테를 죽이려고 했지만 그 때마다 코요테는 자신의 생식 기관을 숨겨 환생할 수 있었다. 결국 여자는 코요테와 결혼할 수 밖에 없었다. 훗날 코요테는 아내의 형제들과 사냥하던 중 죽게 되는데 코요테 아내는 곰으로 변신해 한 명을 제외한 모든 형제들을 죽였다. 살아남은 마지막 형제가 (곰으로 변신한) 코요테 아내를 죽이고는 형제들을 다시 이승으로 데려왔다는 이야기다. 이 신화는 나바호 족들이 코요테를 종종 곰의 암컷 파트너로 여기는 이유를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헤로와 레안드로스, 세계적인 시인을 감동시킨 러브 스토리

$
0
0

사랑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공존해 왔던 가장 보편적인 성정이다. 앞으로도 사랑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결코 희석되거나 소멸되지 않을 몇 안 되는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남녀간의 사랑은 수많은 예술 장르의 주제가 되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적인 사랑도 있고, 우리 소설<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랑도 있다. 특히 신화 속의 남녀간 사랑은 많은 작가나 화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터키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해협 입구를 지키는 작은 섬 안의 크즈탑에도 신화 속 사랑, 그 중에서도 가슴 시리도록 슬픈 러브 스토리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 이름을 따서 레안드로스의 탑이라고도 한단다.

 

레안드로스(Leandros 또는 Leander, 리앤더 또는 레안더라고도 읽는다)는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있는 헬레스폰토스 해협(지금의 다르다넬스 해협)의 아시아 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인 아비도스의 청년이었다. 그 맞은편 세스토스라는 도시에는 아프로디테의 여사제인 헤로(Hero)라는 처녀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우연히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지만 레안드로스의 부모가 그들의 결혼을 반대했다. 아프로디테 신전의 사제는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레안드로스 시신 위로 몸을 던진 헤로. 사진>구글 검색

 

한 번 서로에게 빼앗긴 마음은 부모의 끈질긴 반대도 둘 사이를 갈라놓지 못했다. 그래서 레안드로스는 매일 밤 해협을 헤엄쳐 세스토스로 갔다. 헤로는 높은 탑 위에서 레안드로스가 안전하게 해협을 건널 수 있도록 횃불을 밝혀 길을 안내했다. 누구는 바다가 육지라면 이별은 없었을 것이라며 노래하지만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사랑은 바다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둘의 사랑은 점점 무르익어 갔다.

 

둘의 사랑이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면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신화를 읽어본 독자라면 이어지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날도 레안드로스는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헤엄쳐 세스토스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해협 중간쯤 건넜을 때 갑자기 폭풍우가 일어 파도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레안드로스는 사력을 다해 헤엄을 쳤지만 끝내 힘이 빠져 익사하고 말았다. 게다가 심한 바람에 헤로가 들고 있던 횃불마저도 꺼져 버렸으니 아무리 수영에 자신이 있던 레안드로스도 성난 파도를 견디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헤로는 탑 아래서 밤새 레안드로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밝자 뜬 눈으로 밤을 지샌 헤로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세스토스 탑 아래로 파도에 밀려 시체 한 구가 떠밀려 온 것이다. 헤로는 높은 탑 위에 있었지만 한 눈에 그 시체가 레안드로스라는 것을 알았고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토록 사랑했던 애인을 잃은 헤로는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고 탑 가장자리로 올라가 레안드로스의 시신을 향해 몸을 던졌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Baron Byron, 1788~1824)은 그의 시 아비도스의 신부에서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다고 한다.

 

이 사지부력 좋은 물결이 날라다 준 일이 있었으니/바람이 헬레의 바다위를 세차게 불고 있다/저 무서운 폭풍이 밤바다를 휘몰아치던 그 때처럼/그 때, 에로스는 구하러 나와서도 깜빡 잊고 구하지 못했다


저 용감한 미남자/세스토스 처녀의 유일한 희망을/, 그 때 오직 한 하늘가에 탑 위의 횃불이 반짝였다/그리고 불어오는 강풍과 흩날리는 포말과/울부짖는 바닷새들이 돌아오라고 일렀지만/머리 위의 구름, 눈 아래의 바다가 신호를 보내고 소리를 질러 가지 말라고 일렀지만/그에게는 공포를 예고하는 소리도, 신호도/들리지 않았다/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오직 저 사랑의 빛/멀리서 빛나는 단 하나의 별밖에 보이지 않았다/그의 귀에는 오직 헤로가 부르는 노래/「그대 거친 파도여, 사랑하는 이들을 너무 오래 갈라놓지 말아다오/이 노래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옛이야기, 그러나 사랑은 늘 새로워서/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어 이 또한 진실임을 증명하게 하라

 

여기서 또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바이런은 헤로와 레안드로스 신화를 예술로만 승화시킨 게 아니었다. 직접 레안드로스가 되기도 했단다. 바이런은 콘스탄티노플을 여행하던 중 바람이 불어 배가 운행을 못하게 되자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헤엄쳐서 건넜다고 한다. 그의 수영 실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모르겠지만 바이런은 당시 한 쪽 다리에 장애를 갖고 있었다. 이 무모한 도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쨌든 바이런의 이런 무모한 도전은 훗날 다르다넬스(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는 수영대회를 열리게 했고 급기야는 올림픽 종목에 수영이 포함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러브 스토리가 세계적인 시인 바이런에게 예술적 영감을 줬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바이런의 기행을 거쳐 수영이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니 사랑의 감동이 사랑 그 너머 아득한 곳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세월호 7시간, 박근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
0
0

대통령의 7시간 추적자들/박주민 외 씀/북콤마 펴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결정이 있던 날 이정미 권한 대행이 탄핵 선고 결정 요지문을 읽는 동안 20분이 20년처럼 느껴지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특히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이 파면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발표에 허탈하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법적으로는 그렇다 치지만 국민 법감정으로는 가장 큰 탄핵 사유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민간인 최순실의 국정농단이라는 중대한 사유로 인해 헌법 재판관 전원일치로 파면이 확정되긴 했지만 많은 국민들에게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은 가장 중대한 탄핵 사유로 인식하고 있다.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대통령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헌법 재판소는 의미있는 보충의견을 남겼다.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이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의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 취지는 피청구인의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법정의견과 같고, 피청구인이 헌법상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으나 이 사유만으로는 파면 사유를 구성하기 어렵지만, 미래의 대통령들이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여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 수많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상실되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피청구인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을 지적한다는 내용입니다.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요지문' 중에서-


그들이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을 끈질기게 추적해야만 했던 이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되기까지 지난 3년 동안 정권과 보수언론의 방해로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진상규명은 흐지부지 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정권의 사주를 받은 보수단체는 유가족들에 대해서는 '시체장사'니 '누가 배 타고 놀러 가라고 했냐' 식의 막말은 물론이고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이라는 반인륜적 행태를 서슴치 않았다. 또 세월호 침몰의 진상규명을 촉구한 예술인들에 대해서는 블랙 리스트를 만들어 지원을 중단 등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게이트를 계기로 광화문 광장에 모인 촛불 시민들은 다시금 세월호 진상규명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과 관련된 의혹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시민들이 정권과 보수언론의 끈질긴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망각의 늪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세월호 유가족은 물론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을 끈질기게 추적한 이들이 있어 가능했다. 


 


<대통령의 7시간 추적자들>은 바로 여전히 놓을 수 없었던 세월호 침몰의 진실, 특히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을 끈질기게 추적한 이들의 이야기다. 세월호 변호사로 통했던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대응과 관련해 고발장을 낸 이재명 시장, 대통령의 비선 진료에 대해 꾸준히 단독 보도한 SBS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참사 이후 끈질기게 세월호 진실 규명을 추적해온 '한겨레21'의 안수찬 편집장과 김완 기자, '올림머리' 특종을 해서 큰 반향을 일으킨 한겨레신문의 하어영 기자, 세월호 특조위에서 조사 활동을 진행한 김성훈 조사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대통령의 시크릿'편을 제작한 이큰별 피디, 416가족협의회에서 진상규명분과를 맡고 있는 장훈 과장, '416 단원고 약전'을 집필한 오현주 작가가 바로 그들이다. 박주민 의원은 이들을 초청해 대담을 진행했고 각 대담 뒤에는 진실 추적자들의 후기를 실었다.


이들 진실 추적자들은 왜 그렇게 끈질기게 대통령의 7시간을 추적했을까? 박주민 의원은 '들어가는 글'을 통해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정부는 어렵게 구성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해산했고 몸과 마음이 치유되지 못한 유가족에 대한 의료 지원은 중단되었으며 세월호 인양은 계속 미루어지고 있어 9명의 미수습자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차가운 바다 아래에서 끝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진실이 떠오르지 않은 상황에서 유가족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직은 세월호를 놓지 말아야 할 이유인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수많은 수수께끼 중에서도 '대통령의 7시간'은 진실에 다가서려는 출발점인 것이다.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은 어쩌면 끝내 해명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설령이 대통령이 탄핵이 된다고 해도 그럴지 모른다는 회의감이 든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부재했던 것을 실재했다고 해명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그 7시간은 한국사회가 박근혜 시대를 경유하며 실패한 어떤 것의 총체적 이름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마저 든다. -'한겨레 21 김완 기자의 후기' 중에서-


세월호 7시간, 박근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갇혀 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의미가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

"갇혀 있으니까…"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하고 TV만 지켜보던 시민들은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중대본에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을 듣고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참사 관련 보고는 받았을까?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도 놓치고 도대체 그 7시간 동안 무엇을 했길래 이런 엉뚱한 질문을 했던 것일까? 시민들은 별의별 추측을 다 했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청와대 참모들은 사고 직후부터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데 정작 대통령은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을 하고 있었으니 청와대 참모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대통령 대리인측이 헌법 재판소에 제출한 '대통령의 7시간'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국가적 재난 상황인데도 관저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니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국민은 무슨 의미였을까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 와중에 올림머리를 하고 꼬박꼬박 식사까지 했다니....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 할 대통령의 헌법적 의무는 한번 신고 버리고 만 헌신짝에 불과했다. 


오현주 작가는 그동안 제기돼 왔던 '대통령의 7시간' 의혹에 대해 '대통령의 9시간'이라고 주장한다. 세월호 참사 직후 최초 신고가 접수된 시간이 오전 8시 52분이었는데 이 때 퇴선 명령만 있었다면 10시 21분까지는 전원 구조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바로 그 골든타임에 대한민국에는 대통령이 없었다는 것이다. 즉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최초 신고 접수 시각부터 대통령이 중대본에 들러 엉뚱한 소리를 떠들었던 시각까지 모두 합해 '대통령의 9시간'이라는 것이다. 


'7시간 추적자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은 결국 핵심의제가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세월호 참사 직후 7시간이든 9시간이든 '박근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라는 문제는 그래서 부차적이다. 오히려 대통령이 대형 재난에 맞서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둘째 날, 셋째 날, 그리고 그 후 피해자들과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대통령은 7시간 동안 참사와 관련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심지어 아이들이 여전히 배 속에서 나오지 못하던 그날 밤, 다시 관저로 돌아가 다음 날 아침까지 본관 집무실로 나오지 않았다. -'김성훈 조사관의 후기' 중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자마자 거의 3년 만에 세월호가 다시 떠올랐다. 시민들은 의아해 하고 분노했다. 이렇게 쉽게 인양할 것을 그동안 왜 못했을까? 한편 벌써부터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은폐하고 세월호 인양을 반대했던 자들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세월호 진실 규명은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진실을 향해 가는 걸음이 더디더라도  멈춰서도 안되고 힘들어 해서도 안된다. 망각은 더더욱 안된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분명 2017년과는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4년 동안 대한민국을 기만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이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단 한가지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에 대해 고백하는 것이다. SBS 이큰별 PD가 후기에 남긴 이 말은 국민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최후통첩은 아닐까.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파면 전에 책이 출간됨)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본인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결과와 관계없이, 2014년 4월 16일에 대한 국민들의 질문과 추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대관절 자신은 무엇을 했던 것인지... -'이큰별 PD 후기' 중에서-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Viewing all 1980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