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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여강여호의 신화가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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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병을 위대한 업적으로 바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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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병 환자들/브라이언 딜런 지음/이문희 옮김/작가정신 펴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몸이 갑자기 이상하다. 당신은 어깨에 갑작스러운 통증을 느꼈을 수도, 오장육부를 옥죄는 통증에 온몸이 굳었을 수도, 몸의 일부를 뒤덮은 느닷없는 발진을 발견했을 수도, 혹이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생긴 혹을 목격했을 수도 있다. 불안이 엄습하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동료의 건강검진 결과를 듣다가, 희귀병을 앓는 어떤 환자의 인터뷰를 듣다가, 상사의 호된 질책을 떠올리다가 그랬을지도 모른다. 한번 정신에 스며든 의심은 점점 강렬해진다. 모든 징후가 하나의 질병을 가리키는 듯하다.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병은 당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린다. 이것이 바로 심기증이다.

심기증은 질병과 죽음에 대한 보편적 두려움과 개인의 선·후천적 기질에서 기인한다. 19세기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심기증 증상을 경험했다. 특히 감각이 예민한 작가들은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새뮤얼 존슨, 조지 엘리엇, 토머스 칼라일과 제인 칼라일, 에드거 앨런 포, 찰스 디킨스, 표트르 도스토옙스키, 에밀리 디킨슨, 하워드 휴즈, 제임스 조이스, 사무엘 베케트 등 불세출의 인물 대다수가 심기증을 앓은 것으로 보인다.

<상상병 환자들>은 그 중 대표적인 아홉 사람-제임스 보즈웰, 샬럿 브론테, 찰스 다윈,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앨리스 제임스, 다니엘 파울 슈레버, 마르셀 프루스트, 글렌 굴드, 앤디 워홀-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은이는 9인의 삶을 심기증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다. 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심기증이라는 질병이 초래되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심기증이 이들의 유년 시절·가족 및 친구 관계·성격·행복과 불행·사회생활·예술 활동, 나아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다.

<사무엘 존슨의 전기>로 유명한 영국의 전기 작가 제임스 보즈웰은 계획을 세우고 고치는 데 광적으로 집착했다. 그는 나태를 두려워하는 우울증 환자로 살았다. <제인 에어>의 작가 샬럿 브론테는 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만성통증과 불안에 시달린 신경병 환자였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피하고 고독한 시간을 간절히 원한 소화불량증 환자였다. 백의의 천사로 알려진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자신을 병사들의 어머니라 믿으며 세상을 장악하고 싶어한 지독한 일중독자였다. 헨리 제임스의 누이동생인 미국의 작가 앨리스 제임스는 감각과민증 환자였다. 그녀는 질병마저 예술 작업의 일부라 믿었고 죽음 앞에서도 의기양양했다.

 

프로이트가 논문 자료로 이용한 것으로 유명한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의 저자 다니엘 파울 슈레버는 여자가 되고 싶은 나르시시스트였다. 그는 자신의 성기와 털이 사라지는 망상에 빠졌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는 약초 연기가 자욱하고 빛이 들지 않는 집필실에 스스로를 가둔 천식 환자였다.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타인과의 신체 접촉을 극도로 싫어했으며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았다. 그는 손가락이 다칠까봐 악수까지 거부하는 강박증 환자였다.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은 여드름투성이에 딸기코인 자신의 얼굴과 왜소한 몸을 부끄러워했고,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미용 시술에 의존했다.

<상상병 환자들>은 심기증이라는 상상 혹은 실재의 질병이 우리 몸을 상대로 어떤 정치를 펴나가는지, 정신과 일상,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속한 세계에 대해 무엇을 폭로하는지 분석하고 해석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아홉 사람이 속한 시대·사회·문화는 물론 그들의 내밀한 삶을 들여다본다.

그간 위인의 고통과 불안, 질병은 그들이 달성한 위업을 돋보이게 하는 부속물로 그려지곤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불세출의 인물과 맞먹는, 때로는 그를 압도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찰스 다윈은 심기증으로 인해 과학 연구에 더욱 몰두했으며, 살럿 브론테는 심기증의 경험을 <빌레트>의 여주인공에 오롯이 투영했으며, 다니엘 파울 슈레버는 철저한 망상과 심기증의 고통 속에서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을 집필했다. 질병의 위력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투명한 정신을 건져 올린 그들의 재능이 여전히 놀랍지만, 한편으로는 위대한 성취가 오히려 그들의 고통과 질병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러한 관점의 역전, 관계의 역전 때문에 이 책은 더욱 특별하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정신적·육체적으로 불합리한 순간을 마주하며, 실제적 고통과 불안을 맞닥뜨린다. 꺼림칙한 증상이 나타나면 어느 누구도 묘한 의심과 충격에서 도망가기 힘들며, 미덥지 않기로는 미신이나 매한가지인 전문가에게 수동적으로(또는 공격적으로) 몸을 내맡기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병을 고치거나 세상이 마음의 질병 혹은 상상병을 받아들이도록 진심 어린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결국 삶이, 아니 죽음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므로 우리는 심기증에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다. 때때로 자신을 괴롭히는 증상이 과연 진짜인지 상상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병원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9인의 이야기는 커다란 위안과 용기를 줄 것이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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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 남자만을 기다려온 여인에의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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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죽도 그늘 아래/성석제/1998년

 

협죽도. 얼핏 들으면 무협소설에 나오는 명검 중의 하나인가 싶을 것이다. 잘 어울릴 것 같지는 않지만 협죽도는 협죽도과의 상록관목이란다. 시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최근 협죽도 관련 뉴스를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협죽도는 아무데서나 잘 자라고 공해에 강하기 때문에 몇몇 지자체에서 가로수로 조경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협죽도 특성상 가로수로는 제격일지 모르지만 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협죽도는 아주 미량만 사용해도 치사율이 높아 과거 독화살이나 사약으로 이용했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관상용으로 심어온 지자체들이 협죽도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가로수로 조경된 협죽도 관련 피해사례가 보고된 적은 없지만 안전을 위해 점차 제거해 나가야 한다고 시민들은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협죽도의 독성에 대해 알고 있었던 듯 하다. 성석제의 소설<협죽도 그늘 아래>를 보면 그렇다.

 

어느 때에 소풍을 간 아이들 가운데 하나가 젓가락이 없었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협죽도의 가지를 꺾어서 젓가락으로 만들어 김밥을 먹었다. 그 아이가 다음 날 죽었다. 그때부터 그렇게 믿게 되었다고 한다. 협죽도 그늘 아래에 잠이 들었다가 꺾어진 가지에서 흘러나온 즙이 벌린 입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아이들 사이에 널러 퍼져 있다. 꽃가루만으로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한다. 길가에 흔하디흔하게 핀 협죽도가 아이들에게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이승과 저승에서 모두 바라볼 수 있는 꽃으로 여겨지고 있다. -<협죽도 그늘 아래> 중에서-

 

 

이런 협죽도 아래서 단 한 사람만을 기다려온 여인이 있다니 그 기다림이 협죽도의 독성만큼이나 비장하게 느껴진다. 성석제의 소설<협죽도 그늘 아래>를 요즘 세태로 해석한다면 답답하기 그지 없을 것 같다. 사랑도 일회용 면도기처럼 한 번 쓰고 버리는 세상에 죽었는지도 살았는지도 모른 남편을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다려 왔다니 답답함을 넘어 안쓰럽기까지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작가는 이 답답한 여인에게서 끝까지 시선을 떼지 못한다.

 

소설은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라는 문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수 차례 반복된다. 정지된 시간 속의 풍경처럼 굳어버린 그녀의 삶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독자에 따라서는 이런 구시대적 여인상이 뭐 그리 대단해서 소설의 소재가 되었을까 싶겠지만 작가는 이렇듯 답답한 여인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려는 듯 하다. 어쩌면 50년을 답답하게(?) 살아온 여인에의 존경을 담은 헌사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하다. 어쩌다 이 여인은 협죽도가 그려진 수채화의 풍경이 되었을까?

 

여인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끝내 지우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 한국전쟁 때문에 이 여인을 스무 살에 시집와 처녀로 늙어버린 기구한 삶을 산 것이다. 전쟁이 터지고 인민군이 마을에 들어오자 시아버지는 서울에서 공부하던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인민위원장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 세상이 바뀌자 시댁 식구들은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고 여인의 남편은 학병 입대를 자원했다. 그렇게 전쟁터에 나간 남편은 행방불명이 되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남편을 여인은 50년 넘게 기다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가시리에서 여자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누가 감히 여자의 집에서 도둑질을 할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도둑질한다고 해서 도둑질할 수도 없는 것을 가져가서 무엇에 쓰겠는가. 협죽도도 안다. 협죽도에게 물어보라. 수국에게 물으라. 남의 삶을 도둑질할 수 있는가. 있다면 그걸 어디다 쓰겠는가고. 여자는 자신의 일생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협죽도 그늘 아래> 중에서-

 

사망통지서도 없고 그렇다고 살아있다는 확신도 없는 행방불명된 그들을 기다린 사람들이 어디 이 여인 한 명뿐일까? 요즘 돌이켜보면 이 여인의 50년은 그나마 참을 만 했으리라 생각되기도 하다. 60년 넘게 가족을 기다려온 이들이 단 몇 시간의 만남을 뒤로 하고 다시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을 나누던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TV에서 볼 때마다 아픈 역사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고 그 상처를 더 곪게 하는 또 하나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현실이 협죽도 아래 여인을 더 슬프고 가혹한 삶으로 내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륜과 천륜마저도 정치논리의 장 속으로 가두어 버리는 현실. 협죽도보다 더한 독성을품고 여인과 하나의 풍경이 되어버린 현실. 하지만 시간은 더 이상의 기다림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데올로기를 넘어 무수히 많은 이들의 절박한 현실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정치. 더 이상 기대나 희망의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직은 앉아 있을 한 여인을 위해.

 

‘아직은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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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그림에 담긴 인간의 은밀한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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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미 갤러리/문국진·이주헌 지음/이야기가있는집 펴냄

 

법의학자와 미술평론가가 ‘음식물 정물화’ 속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을 파헤친다. 이 책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예민한 미각을 주제로 명화 속에 담겨 있는 음식의 풍속과 사람들의 욕망을 풀어내고 있다. 인간들이 느끼는 맛은 분위기, 성향, 감정, 심성 등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기 때문에, 저자들은 단순히 ‘맛’이라는 표현보다는 ‘풍미’라는 말로써 명화 속에 담겨진 풍성한 이야기들을 끌어내고 있다.

법의학자 문국진은 음식물에 포함된 과학적, 의학적 의의와 맛의 감각성에 대해 명화를 이야기하고 있고, 미술평론가 이주헌은 음식 문화가 예술로 승화된 인문적 배경과 역사적 배경으로 명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 <풍미 갤러리>는 맛이 담긴 음식, 음식에 담긴 사람 그리고 이 모두를 표현하고 있는 그림에 대해 과학적, 인문학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 그림에 대해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안한다.

“제아무리 예쁘게 장식되고 아름답게 꾸며진 음식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깊이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는 죽음과 일대일로 마주하게 된다.”


푸줏간에는 지금 돼지 족발, 소시지, 곱창, 가죽이 벗겨진 소머리, 가금류, 생선 등 방금 잡은 온갖 동물들이 걸려 있다. 피테르 아르트센이 그린 [푸줏간](1561)의 모습이다. 어쩌면 풍성해 보이는 먹거리에 행복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핏빛으로 내걸린 동물들은 존재의 사멸, 곧 죽음을 드러낸다. 이것은 동물들뿐만 아니라 인간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음식물 정물화는 죽음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그림이다. 음식물이 주는 풍요로움 뒤에는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이 그림들을 보면서 죽음에 대해 인식하는 사람은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대해 진지해질 것이다. 화가들이 그 그림을 그린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죽음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 대해 감사하고, 삶을 누릴 수 있는 희생에 대해 기도하고 인생을 허투루 낭비하지 말라는 진지한 사색이 담겨 있는 것이다.

“신화에 등장하는 음식에는 인간의 염원이나 소망, 금기, 호기심 같은 것이 담겨 있다. 그 바탕에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거대한 연회장에서 남자들이 굴을 즐기고 있다. 바닥에는 이미 남자들이 먹어버린 굴 껍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기둥에는 비너스와 큐피드가 조각되어 있다. 이제 큐피드는 사랑의 화살을 쏘려고 하고 있다. 천장에는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모습이 황금으로 조각되어 있다. 장 프랑수아 드 트루아가 그린 [굴 점심식사](1735)의 모습이다. 굴은 스태미나 음식으로 알려져 있고, 카사노바는 연인들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 하루에 굴 50개를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남자들은 모두 잘 차려 입었고, 상차림 또한 격식 있다. 하지만 손으로 굴을 허겁지겁 먹고 있다. 격식 있는 모습과는 달리 손으로 굴을 먹는 모습은 육체적 쾌락에 대한 갈망을 의미한다. 천장에 조각되어 있는 황금 조각들은 이 굴을 먹은 후 남자들이 상상하는 바로 사랑의 순간이다.


빈첸초 캄피가 그린 [리코타 치즈를 먹는 사람들]을 입 안 가득 리코타 치즈를 넣은 남자들의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 남자들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식욕에 대한 만족도가 곧 성욕에 대한 만족도라는 것이다. 성적 만족도도 물론 해결되어야 하지만, 몇 시간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식욕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면 인간은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이런 그림들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욕망인 먹는 즐거움에 대해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음식물 정물화를 감상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음식물 정물화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진실을 명료하게 전해주는 그림이다. 음식물 정물화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 대한 모습을 그린 그림들을 그리며 화가는 인간의 은밀한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사티로스는 산속을 헤매던 농부를 만났다. 불쌍한 농부를 구해주기로 한 사티로스는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런데 농부는 손에 후후 입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사티로스가 물어보자 농부는 언 손을 녹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집에 온 사티로스는 농부에게 뜨끈한 수프를 대접했다. 그러자 농부는 수프를 한 수저 떠서는 후후 입김을 불었다. 사티로스가 왜 그러냐고 또 묻자 뜨거워서 식히는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티로스는 냉정하게 농부를 쫓아냈다.


왜 사티로스는 농부를 쫓아냈을까? 그 이유는 어떻게 한 입에서 뜨거운 김과 차가운 김을 모두 내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티로스는 인간의 이중적인 모순에 대해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티로스는 이 이야기를 한 농부의 집에서 재미있게 풀어놓고 있다. 이 우화를 야콥 요르단스는 [사티로스와 농부]에서 위트 있게 그려냈다. 인간은 음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생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에 음식은 인간에게는 가장 원초적인 욕망의 대상이 된다.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보기 위해 화가들은 이 음식을 가지고 삶과 사회를 풍자해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절실한 욕망의 주체가 우리의 빈틈을 공격할 때 우리는 아차 하는 깨달음은 물론, 위트 있게 정곡을 찌른 풍자에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공식과, 음주의 역사와 문화, 카니발리즘 그리고 음식에 배어 있는 문화인류학적 배경 등을 명화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미술이 다뤄온 음식 주제의 그림들과 그 배경에 자리한 인간의 본능적, 역사적, 문화적 욕구들을 두루 살피는 책이다. 풍성한 식탁에 한가득 차려진 음식들, 그리고 그 음식들을 즐기며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숨겨진 이면에는 어떤 욕망이 자리하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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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과 고기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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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돼지 세 마리를 키워서 고기로 먹었나/우치자와 쥰코 지음/정보희 옮김/달팽이 펴냄

 

우리가 먹는 돼지고기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식탁에 올라왔을까? 알듯하면서도 실상은 별로 아는 게 없다. 예전에는 시골 농가에서 마당 한구석에 돼지우리를 만들어 부업으로 한두 마리씩 잔반을 먹여 키웠다. 집안에 경조사 같은 큰일이 있을 때는 직접 도축하여 먹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기계화된 시스템을 갖춘 거대한 축사에서 대량으로 사육하고 있다. 수퇘지 정자재취와 인공수정 분만과 사육, 그리고 도축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이 공장식으로 정해진 공정을 거쳐 고기가 되어 마트에 진열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과정이 가려진 고기를 손쉽게 식탁에 올리고 있다. 요즘같이 모든 게 분업화된 시대에 이러한 현상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저자가 굳이 돼지 사육과 도축의 세계를 직접 체험하고자 한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의 르포를 따라 읽다보면, 한 마리의 가축이 마트에 진공 포장된 고기로 진열되기까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축산과 도축 세계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이면에 담긴 생명에 대한 강렬한 성찰기다.


저자는 교배에서 시작해 요리로 만들어 먹기까지, 일반인은 전혀 알 수 없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며 자세하게 기록한다. 가축이 어떤 식으로 길러지고 처리되는지 궁금하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비록 글을 쓰기 위한 소재였다고 해도 그 열정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도시여성인 저자가 교배에서 분만, 거세, 그리고 도축에 이르기까지 좌충우돌 돼지들과 씨름하며 고생하는 모습은 어쩌면 극성스럽다고까지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매사 적극적이며 명랑한 성격인 저자는 돼지를 키우면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웃음이 절로 나게 하는 유쾌한 필치와 직접 그림까지 그려 독자들의 눈을 끌어들인다. 애완동물과 가축의 경계선을 애매하게 하지만 세 마리에게 이름까지 지어준 저자의 애정도 가득하다.

저자는 르포작가로 성실함과 감상에 젖지 않으려는 마음을 유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세 마리 돼지를 도축하기 전에 꼭 잡아먹어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하고, 도축장에 도착해 많은 돼지들과 함께 계류장에서 대기할 때 스트레스로 모세혈관이 터져 피부가 새빨개진 돼지와 도축의 순간을 지켜보며 안쓰럽고 괴로워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이 책은 채식과 육식에 대해 논쟁적이지 않다. 채식주의자가 아닌 저자는 도축뿐 아니라 육식에 대한 차별을 양산하는 사회의 모습, 종교, 사람들의 마음과 직면할 때마다 왜 그럴까? 무엇이 불쌍하고 무엇이 불쌍하지 않은지, 또 무엇을 먹고 무엇을 안 먹을 것인가 하는 기준의 근거가 과연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하지만 답은 얻지 못한다. 저자의 돼지 키우기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세 마리 시식회에서 저자는 전혀 뜻하지 않았던 믿음에 휩싸인다. 자신이 귀여워하면서 키우고, 죽이고, 먹은 세 마리가 죽어서도, 소화가 되고 배설을 한 뒤에도 나와 함께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이렇듯 저자의 돼지 키우기는 생명에 대한 성찰과 육식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준 계기를 만들어 준다. 채식을 하든 육식을 하든 우리는 다른 생명을 먹어 우리의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은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다. 이 책은 돼지라는 가축을 통해 그 깨달음의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가 중요하게 다루는 또 하나는 현대 축산의 대규모화에 따른 문제점이다. 우리가 가정에서 한두 마리씩 기르던 시대보다 지금은 사육방법도, 고기의 가격이나 수요 등등 많은 것이 변했다. 모든 것이 대형화 자동화되었디. 그에 따른 많은 물과 전기, 석유를 소비한다. 사료의 대량소비 또한 문제다. 이 문제점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다. 저자는 이때 일어난 축산농가의 피해를 자세히 얘기하고 있다.

대규모 공장식 축산은 질병에도 취약하다. 우리는 구제역으로 벌어진 엄청난 가축들의 살처분을 기억한다. 생태 환경은 물론이며 생명 윤리 면에서도 대단히 큰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현대 축산의 에너지소비나 사료소비를 봐도 이대로 가다간 언젠가는 축산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출구를 찾지 못한다면 끝내는 버틸 수 없을 거라는 위기의식. 출구는 무엇일까? 한 도시 여성의 무모한듯하지만 용감한 돼지 키우기는 우리시대의 식육문제와 축산의 미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값진 실천기록이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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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위기를 조장하는 사회에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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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유리문/사키(Saki, 1870~1916, 버마)

 

한 소녀가 있었다. 베라라는 이름을 가진 이 소녀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짧은 순간에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었다. 열여섯 살에 불과했지만 순발력과 재치가 뛰어나 그 재능을 잘만 키운다면 장차 세계적인 소설가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쨌든 소녀의 창작 능력과 입담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한 청년을 공포와 불안에 떨게 만들고 말았다. 사키의 소설 <열린 유리문>의 분위기는 학창 시절 들었던 어디에나 있었던 학교 괴담처럼 괴기스럽고 공포스럽다. 결국 소녀의 꾸며낸 이야기였다는 마지막 반전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누나의 소개로 새플턴 부인을 방문한 프램튼 너틀은 부인을 기다리는 동안 소녀로부터 이 집 특히 열린 유리문에 얽힌 사연을 듣게 된다. 사연은 이랬다. 3년 전 오늘(10월 어느날) 새플턴 부인의 남편과 두 시동생은 도요새 사냥을 떠났다. 하지만 비가 지독하게 왔던 여름이 사냥을 나갔던 세 남자는 늪에 빠져 죽었고 여태 시신조차도 수습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느닷없는 비극에 슬픔에 빠지 새플턴 부인은 그들이 언젠가 돌아올 거라는 생각에 늘 유리문을 열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소녀는 단순히 입담만 뛰어난 게 아니었다. 이야기 분위기에 맞는 적절한 몸짓과 표정을 통해 프램턴을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세 남자가 열린 유리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으니 프램턴은 그야말로 심장이 멎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프램턴은 그야말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고 소녀는 프램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새플턴 가족에게 또 다시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었다.

 

▲중국에서 입국한 북한 식당 종업원들 


프램턴 너틀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프램턴이 누나의 소개로 새플턴 부인을 찾아간 것도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다가는 우울증이 더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우울증과 제목인 '열린 유리문'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열린 유리문'과 이에 얽힌 소녀의 꾸며낸 이야기는 세상과 소통이 절실한 주인공에게 보내는 대단한 역설이 아닐까 싶다. 사실 소녀의 꾸며낸 이야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헛점이 있었다. 오늘(10월)과 3년 전 오늘(여름)이 그것이다. 그러나 세상과의 접촉이 부족했던 주인공에게 한번 빠져든 공포와 불안은 합리적인 사고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불안과 공포 또는 위기를 가장 적절히 이용하는 집단이 권력일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조작해낸 불안과 공포, 위기 앞에서 합리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게다가 언론을 통해 주입된 더 나아가 세뇌된 불안과 위기 앞에서 냉정함을 유지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굳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현 정권에서도 이런 권력의 속성은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다. 여론의 뭇매를 맞거나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경제 위기론', '북핵 위기론'으로 여론의 반전을 꾀하곤 했다. 근거 없는 불안과 위기지만 이미 비판 능력을 상실한 언론의 도움으로 그때마다 권력의 위기를 넘어가곤 했다. 

 

▲유권자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는 새누리당 지도부와 국회의원 후보자들 


권력의 이런 행태는 이번 4.13총선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선거 전 마지막 주말을 앞둔 지난 8일 해외의 북한 식당에 근무하던 직원 13명이 집단 탈북해 7일 국내에 들어왔다고 공개 발표한 것이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북풍 논란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정부의 이번 발표가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탈북자의 북측에 남아있는 가족의 신변보호나 탈북자의 안전 등을 고려해 공공연한 비밀에 부쳐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탈북이 이루어진 단 하루만에 신속하게 발표한 것도 이런 의혹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11일에는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북한군 대좌와 북한 외교관 일가족의 탈북 사실도 공식 확인해 주는 등 이례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결국 북한 정권의 불안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를 부추기기 위한 또 다른 형태의 북풍 조작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는 아니 최근 몇 번의 선거에서는 우스꽝스럽게(?) 하지만 톡톡히 효과를 본 불안과 위기 조장 행태를 경험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들이 느닷없이 아스팔트 위에 무릎을 꿇고 읍소하는 장면이다. 특히 집권 여당 지도부는 이번 선거에서도 뭔지는 모르지만 사죄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삭발까지 했다. 사죄를 했으면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 막무가내로 읍소하며 한번만 더 지지해달라고 한다. 지지자들에게 현재 위험하니 결집해 달라는 얘기겠지만 사실은 협박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결과는 소설에서처럼 대반전으로 막을 내렸다. 어느 언론도 예상하지 못했던 여소야대는 물론 국회 제1당마저 제1야당이 차지한 것이다. 권력과 권력에 굴종한 언론은 '열린 유리문'이 상징하는 바 시민들의 소통 공간이 확대되고 있다는 현실을 간과한 것이다. 소통 공간의 확대로 합리적이고 냉철한 학습 효과가 그동안 반복됐던 '불안론'과 '위기론'을 이긴 것이다. 권력과 정치권이 시민들의 선택을 어떻게 반영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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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예방 부적에 웬 러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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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전/작자 미상(신라 시대로 추정, 57~935년)/이대형 편역/소명출판 펴냄

 

나무 목[木]자 둘을 합치면 수풀 림[林]자가 된다는 것은 한자 문외한이 아닌 이상 누구나 다 아는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렇다면 물 수[水]자 셋을 합치면 어떤 글자가 될까? 아니 그런 한자가 있기나 할까? 나무가 둘 모여 수풀을 이루니 물이 셋 모이면 어떤 의미일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묘[淼]자란다. 수면이 아득할 정도로 '물이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조선시대 궁궐 전각에는 화재예방을 위해 수[水]자를 새긴 육각형 은판을 봉안했다고 한다. 물론 '드므'라는 커다란 물항아리를 건물 곳곳에 배치했다고는 하나 건축물 대부분이 나무로 지어져서 한 번 불이 나면 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주술적 힘이라도 빌리려 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불조심이긴 하나보다. 한편 신라시대에도 화재예방을 위한 이런 부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풍속에 화재를 막기 위해 다음과 같은 주문을 문과 벽에 붙였다고 한다.

 

지귀 마음에서 일어난 불이

몸을 태우고 불귀신으로 변했네

창해 밖으로 흘러 옮겨가

보이지도 말고 가까이 하지도 말지라

 

▲수이전/이대형 편역/소명출판 펴냄 

 

<수이전>에 따르면 신라인들이 이런 부적을 건물에 붙인 데는 아주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요즘말로 하면 러브스토리? 그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 이야기가 숨어있다고 한다. 신라시대 활리의 역인에 불과했던 지귀가 마음 속에 품었던 이가 있었으니 다름아닌 선덕여왕이었다. 선덕여왕의 단아하고 수려함을 사모하여 하루가 멀다하고 근심하고 눈물을 흘려 모습이 초췌해졌는데 이 소식을 왕이 듣고 불러 말하길 '짐이 내일 영묘사에 가서 향을 피울 것이다. 너는 그 절에서 짐을 기다려라' 하였다.

 

지귀는 다음날 영묘사 탑 아래에 가서 왕의 행차를 기다리다가 홀연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왕이 절에 도착하여 향을 피우고는 지귀가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팔찌를 빼어 지귀 가슴에 놓고는 궁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잠에서 깬 지귀는 가슴에 왕의 팔찌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는 왕을 기다리지 못한 자신을 한탄했다. 지귀는 그 안타까움에 오래도록 기절해 있다가 마음의 불이 일어나서 그 탑을 불태우고 말았다. 지귀가 불귀신으로 변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주술사에게 명하여 위와 같은 주문을 짓게 했다고 한다. 어떻게 일개 역졸이 왕을 사모할 수 있었을까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수이전> 제목 그대로 아주 '기이한 이야기'에 불과하니까. 다만 신분의 벽에 부딪쳐 번민해야만 했던 한 남자의 사랑이 예나 지금이나 안타깝기는 똑같다는 것이다.

 

<수이전>은 신라 사회를 배경으로 한 최초의 설화집이다. 저작 연대는 통일신라 후기로 추정되지만 현존하지는 않고 <삼국유사>, <대동운부군옥>, <해동고승전>, <필원잡기> 등에 실려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 문인 박인량이 <수이전>의 저자라는 주장도 있지만 개작의 대표적인 인물로 추정될 뿐 확실한 근거는 없다.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등에 총 13편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등장 인물도 최치원, 선덕여왕, 김유신, 원광법사에서 일반 백성들까지 다양하다. 대부분 짤막한 이야기들이지만 최치원에 관한 이야기는 '선녀홍대', '최치원전'이라는 제목으로 그 분량이 상당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선덕여왕과 모란에 관한 이야기,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 등도 모두 <수이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사랑 이야기가 많은 걸로 봐서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랑이 갖는 의미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지귀의 러브스토리만큼이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하나 더 소개하고자 한다. <대동운부군옥>에 전한다.

 

신라시대 최항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항이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는데 부모의 반대로 끝내 만나지 못하고 갑자기 죽고 말았다. 분명 죽었건만 항은 여드레가 지난 후 머리에 석남 가지를 꽂고 여인의 집을 방문해서는 석남 가지를 나누어 주면서 부모님이 결혼을 허락하셨다며 여인과 함께 그의 집으로 돌아갔다. 항은 담을 넘어 집에 들어갔고 여인은 날이 새도록 그 집 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 때 그 집 사람이 나와 밤새 문 앞에 서있는 연유를 물으니 여인은 밤새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했다. 그 집 사람은 어이가 없었다. 팔 일 전에 죽어 장사까지 치렀는데 무슨 얘기냐고 물었다. 여인이 말하기를 항이 석남 가지를 나누어 꽂았다면서 이것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관을 열어보니 놀랍게도 최항의 시신 머리에 석남 가지가 꽂혀있었고 옷마저 이슬에 젖어 있었다. 여인은 그때서야 항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통곡했다. 그때 항이 다시 살아나서 20년을 해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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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쿠마츠와 우라칸, 태풍 허리케인은 어디에서 유래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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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신화】우리나라에 태풍이 있다면 북대서양이나 카리브해, 멕시코만 등에서는 해마다 허리케인(Hurricane) 때문에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보곤 한다. 허리케인은 대서양 서부에서 발생하는 열대저기압을 일컫는데 마야 신화의 우라칸(Huracan)에서 유래했다.‘하늘의 심장’이라고도 부르는 우라칸은 폭풍의 신으로 구쿠마츠(Gucumatz)와 함께 마야의 창조신으로 알려져 있다.

 

<포폴 부>에 따르면 태초에 세계는 고요하고 적막한 거대한 빈 공간이었다. 오직 땅에는 물살에 휩싸이고 반짝이는 초록, 파랑 깃털로 둘러싸인 뱀 구쿠마츠와 하늘에는 ‘하늘의 심장’ 우라칸만이 존재하고 있었다.구쿠마츠와 우라칸은 거대한 빈 공간이었던 세계에 산과 땅, 나무와 숲 등 각종 자연을 창조해 냈다. 하지만 자연만으로는 허전했다. 구쿠마츠와 우라칸은 새로운 세상에 걸맞는 새 생명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 사슴, 재규어, 하지만 신들은 동물들의 지위를 인간의 먹이로 격하시키고 말았다. 구쿠마츠와 우라칸이 동물들을 만든 이유가 자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늘 찬양해 주길 기대했지만 동물들은 말을 할 줄도 몰랐고 신들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신들은 인간을 만들기로 하고 진흙으로 한 명의 인간을 빚었다.

 ▲구쿠마츠.  사진>구글 검색

그들은 그저 꽥꽥거리고, 짹짹거리고, 그르렁대기만 했다. 모두 제각각 다른 소리로 떠드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포폴 부> 중에서-

 

하지만 신들이 만든 최초의 인간도 그들의 뜻에 부합하지 못했다. 말을 하긴 했지만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았고 진흙으로 만든 탓인지 너무 쉽게 부서지고 말았다. 할 수 없이 구쿠마츠와 우라칸은 점쟁이 부부인 스피야콕(Xpiyacoc)과 스무카네(Xmucane)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스피야콕과 스무카네는 나무로 인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괘를 주었다. 신들은 즉시 나무로 인간을 만들었다. 다만 남자는 나무로 만들었지만 여자는 골풀로 만들었다고 한다.이제 신들이 원하던 대로 나무 인간들은 제물을 바치고 그들을 찬양했을까?

 ▲허리케인의 어원이 된 우라칸(Huracan).  사진>구글 검색

오히려 나무 인간들은 진흙 인간들보다 더 형편 없었다. 말할 수는 있었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창조자들에게 제물을 바치기는커녕 섬기려 들지도 않았다. 게다가 신들의 걱정은 나무 인간들이 자신들을 모욕하고 파멸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무 인간들도 파멸시키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구쿠마츠와 우라칸은 송진 비로 대홍수를 일으켜 나무 인간들을 쓸어버렸다. 뿐만 아니었다. 나무 인간들이 사용하던 도구와 다른 동물들도 그들을 향해 달려 들었다. 결국 나무 인간들이 숨을 곳은 없었다. 홍수를 피해 살아남은 나무 인간들은 깊은 숲 속에 자신들의 몸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 마야 신화에 따르면 숲 속의 원숭이들이 바로 나무 인간들의 후손이라고 한다.신들의 신중치 못했던 창조 행위를 기억하려는 의미에서 남겨둔 것이라고 한다.

 

마야 신화에 따르면 이 일이 있은 후 당분간 세상에는 인간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위대한 쌍둥이 영웅 스발란케(Xbalanque)와 우나푸(Hunaphu)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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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신 아푸스와 티아마트, 그들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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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신화】바빌론의 창조신화는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라는 제의 의식 문집에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에누마 엘리쉬에 따르면 태초에 우주는 담수의 신 아푸스(Apusu)와 염수의 신 티아마트(Tiamat)만이 존재했다. 두 신은 부부의 연을 맺고 우주에 다양한 신들을 만들었다. 첫 번째가 라무(Lahmu)와 라하무(Lahamu)였다. 또 라무와 라하무가 결합하여 안샤르(Anshar)와 키샤르(Kishar)를 낳았고 안샤르와 키샤르가 결합해 하늘의 신 아누(Anu)와 물의 신 에아(Ea)를 낳았다.  에아로 인해 바빌론 신화 최고의 영웅 마르둑(Marduk)이 탄생하게 되었다.

 

마르둑이 태어나기 전 아푸스와 티아마트는 어린 신들이 너무 떠드는 바람에 조용히 쉴 수가 없었다. 아푸스는 자신의 시종 뭄무(Mummu)와 함께 어린 신들을 없애버릴 계획을 세웠다. 아푸스의 계획을 알게 된 티아마트는 자신이 낳은 신들을 상대로 전쟁을 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아푸스는 애초 계획을 밀어붙였고 어린 신들은 어찌 할 바를 모른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아푸스는 에아에 의해 시종 뭄무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고 에아는 이번 전쟁의 승리를 기념해 ‘아푸스’라는 궁전을 세웠고 이 곳에서 마르둑을 낳았다.

 


에아가 낳은 마르둑은 기존의 신들과는 많이 달랐다. 힘이 엄청나게 셌고 성격까지 난폭했다. 이런 마르둑 때문에 하늘의 신들은 불만이 커져갔고 급기야 아푸스가 어린 신들과 전쟁을 벌일 때 반대했던 티아마트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렸다. 결국 티아마트는 마르둑을 없애기로 결정하고 자신의 전사 킹구(Kingu)를 비롯해 수많은 괴물을 만들어 남편 아푸스의 원수를 갚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어떤 신도 티아마트와 맞설 용기가 없었다. 이때 마르둑은 자신에게 신전회의의 전권을 준다는 조건으로 티아마트와의 결투를 수락했다. 드디어 바빌론 신화의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마르둑은 활과 화살, 곤봉, 번개, 그물을 준비해서 티아마트와 맞섰다. 마르둑은 그물을 던져 티아마트를 사로잡았다. 이 때 티아마트가 자신을 집어삼키려고 입을 벌리자 바람을 일으켜 티아마트의 몸을 부풀린 다음 화살을 쏘아 티아마트를 산산조각으로 만들었다. 킹구를 비롯한 티아마트의 전사들도 마르둑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 전쟁의 승리로 마르둑은 신 중의 신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마르둑은 아버지 에아가 그랬던 것처럼 에샤라(Esharra)라는 신전을 만들고 거기에 다른 신들을 거주하게 했다.

 

티아마트를 물리친 마르둑은 티아마트의 몸을 둘라 갈라 반쪽은 하늘을 만들고 반쪽은 땅을 만들어 천지를 창조했다. 또 신들의 노역을 대신해 줄 인간이 필요했는데 티아마트와의 전쟁에서 사로잡았던 티아마트의 전사 킹구를 죽이고 킹구이 몸에서 흘러내린 피로 인간을 만들었다드디어 신들은 노동에서 해방되었고 인간들은 신전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신들에게 술과 음식을 바쳤다. 이 곳이 바로 바빌론에 있었던 에사길라(Esagila) 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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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 우주를 창조하고 스스로는 자연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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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화】공자는 ‘태산에 오르니 세상이 작아 보인다’고 했다. 조선 시대 문장가 양사언도 ‘태산이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며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라고 노력도 하지 않고 포기부터 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비판했다. 도대체 태산이 얼마나 높길래 세상이 작아 보이고 하늘 아래 가장 높은 산으로 묘사되었을까? 사실 중국 산둥성에 있는 태산의 높이는 1,500미터 남짓한 평범한 산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태산은 한국인들에게 백두산이 그렇듯 신성한 산으로 여겨졌다. 도교의 성지면서 춘추전국시대 이래로 높은 산의 대명사가 된 태산에 대한 중국인들의 애정은 신화 속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세상을 창조한 거인 반고의 머리 부분이 변해 태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반고(盤古)신화는 중국 춘추전국시대가 막을 내린 지 500년이 지난 삼국시대 오 나라의 학자 서정이 지은<삼오역기><오운역년기>에 실려 있었으나 두 책은 이미 없어졌고 송나라 때 백과전서인<태평어람>과 청나라 때 마숙이 지은<역사>에 두 책의 일부 내용이 인용됨으로써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전세계 대부분의 창조신화가 그렇듯 중국의 창조신화인 반고신화도 창조 전 태초는 혼돈상태였다. 창조란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중국 창조신화에서 혼돈에 질서를 부여한 신이 바로 반고다. 태초에 혼돈은 마치 달걀과도 같았는데 노른자와 흰자가 한데 섞여 어떤 분별도 없는 상태였다. 반고는 무려 1 8,000년 동안 달걀처럼 생긴 혼돈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혼돈이 반고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천지창조는 알이 두 부분으로 분리되면서 시작되었다. 무거운 요소들은 땅을 형성했고 가볍고 순수한 요소들은 하늘을 형성했다. 혼돈의 태초가 1 8,000년 동안 알에 갇혀 있었던 것처럼 1 8,000년 동안 땅과 하늘 사이의 거리는 매일 약 3미터씩 증가했고 반고도 같은 비율로 자라서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고는 곰가죽이나 나뭇잎을 걸치고 있는 난쟁이로 묘사된다.


 

마침내 하늘과 땅은 제 자리를 잡았고 반고도 나이를 먹어 쇠약해져 갔다. 결국 반고는 죽음을 맞이했고 거대한 몸은 쓰러져 땅을 채웠다. 이 때 반고의 몸에서는 갖가지 변화가 시작되었다. 반고의 주검은 지금의 자연을 형성해 가고 있었다.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반고의 왼쪽 눈은 태양이 되었고, 오른쪽 눈은 달이 되었다. 반고의 눈물은 강과 바다의 재료가 되었다. 머리털은 별과 숲이 되었다. 반고의 숨결은 바람과 구름이 되었고 목소리는 우레와 번개가 되었다. 반고의 힘줄은 길이 되었고 살은 밭이 되었다. 반고의 이와 뼈는 광물과 돌이 되었다. 반고의 정액은 진주가 되었고, 골수는 옥이 되었다. 날씨의 변화도 반고의 기분변화로 설명되었다.

 

한편 반고의 머리는 동쪽 산이 되었고, 배는 중앙의 산이 되었으며, 왼팔은 남쪽, 오른팔은 북쪽, 발은 서쪽의 산이 되었다. 중국인들이 신성시하는 태산은 바로 반고의 머리가 변해 생긴 산이라고 믿었다. 태산의 신성성을 후대에 기록된 반고신화로 뒷받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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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거인 이미르, 잠자던 북유럽 신화를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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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이미르(Ymir)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거인이다. 세계가 창조되기 전 태초에는 긴눙가가프(Ginnungagap)라는 허공만이 존재했다. 이 태초의 허공인 긴눙가가프 양편에 두 영역이 나타났는데 남쪽에는 불의 영역인 무스펠하임(Muspelheim)이 북쪽에는 추위와 얼음의 영역인 니플하임(Niflheim)이 그것이었다. 두 영역 사이에는 무스펠하임의 뜨거운 공기와 니플하임의 차가운 공기가 만나는 곳이 있었는데 이 곳에서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북유럽 신화 최초의 거인인 이미르라는 서리 거인이 형성되었다. 


최초의 거인인 이미르는 무스펠하임의 따뜻한 공기 속에서 잠이 들었고 그의 몸에서는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미르의 땀에서는 또 다른 서리 거인들이 나타났는데 그들이 바로 요툰(Jotunn)이다. 흉악한 거인인 요툰은 온 대지를 뒤덮을 정도로 번성했다. 요툰은 이미르와 운명을 같이 하게 된다. 그렇다면 허공만이 존재한 긴눙가가프에서 이미르는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을까? 이미르와 함께 얼음이 녹으면서 생긴 거대한 황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르와 다른 서리 거인들은 아우둠라(Audhumla)의 젖을 먹고 생존할 수 있었다. 이미르의 땀에서 태어난 서리 거인족인 요툰이 번성하는 데도 아우둠라가 있어서 가능했다. 아우둠라가 긴눙가가프를 돌아다니며 얼음을 핥아 나가자 얼음에 갇혀 있던 서리 거인들이 얼음에서 풀려났고 점차 무리를 형성했던 것이다. 아우둠라 때문에 얼음에서 풀려난 서리 거인 중 부리의 아들 보르와 볼트호른의 딸 베스틀라가 결혼해 북유럽 최초의 신이 오딘(Odin), 빌리(Vili), (Ve)를 낳았다. 삼형제 중 오딘이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처럼 신 중의 신으로 등극하게 된다.


 

북유럽 신화에서 이미르의 존재가 중요한 것은 이미르로 인해 긴눙가가프 시대를 지나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아버지 세대와의 전쟁을 통해 세대교체를 이룬 것처럼 오딘, 빌리, 베는 끊임없이 공격해 오는 이미르와의 전쟁을 통해 북유럽 신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오딘 빌리, 베 등 세 신은 이미르의 공격을 물리쳤고 이 때 죽은 이미르의 피는 모든 서리 거인들이 빠져죽을 만큼 거대한 바다를 이루었다. 베르겔미르와 그의 아내만이 살아남아 요툰하임(Jotunnheim)에 정착해 지금까지 신과 인간에 대한 복수를 꿈꾸고 있다고 한다. 지금의 노르웨이 중앙의 빙하를 안고 있는 고원을 요툰하임으로 부르고 있다 


중국 신화에서의 반고처럼 이미르의 죽음은 천지창조의 새 시대를 여는 일대 변혁의 시기이기도 했다. 오딘, 빌리 , 베는 이미르의 살로 지구를 만들었고, 부러진 뼈로는 산맥을 만들었다. 이미르의 피는 강과 바다와 호수가 되었고, 두개골은 거대한 하늘의 천장이 되었다. 또 불의 영역인 무스펠하임에서 불꽃을 쏘아 올려 태양과 달과 별을 만들었다. 이미르의 사체로 세상을 창조한 오딘, 빌리, 베는 드디어 물푸레나무로 최초의 남자인 아스크(Ask)를 창조했고, 느릅나무로 최초의 여자인 엠블라(Embla)를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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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을 창조한 여와가 결혼제도까지 만든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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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화】여와[女媧, NiiWa]는 원래 원시 모계 사회에서 여성 지도자의 호칭이었다. 하지만 중국 신화에서는 인간을 창조한 신으로 추앙 받고 있다. 흔히 여와는 뱀 모양의 몸에 여자 머리가 달린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반고가 세상을 창조한 이후에 나타나 인간을 창조했다고 한다. 여와는 반고의 몸에서 생겨난 우주와 자연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주와 자연만으로는 너무 심심하고 외로웠다. 그래서 인간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여와는 진흙으로 정성껏 최초의 인간을 빚었다. 그저 진흙으로 빚은 인간 인형에 불과했으나 여와는 진흙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여와가 만든 인간들로 인해 고요했던 세상이 활기로 넘쳤다. 이에 만족한 여와는 더 많은 인간을 빚고 생명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여와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자신이 정성껏 만든 인간들이 늙으면 죽게 된다는 사실이다.무한정 인간을 빚어내는 일도 곧 싫증이 나고 말았다.여와는 인간 인형에게 번식 능력을 줌으로써 인간이 오래도록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도록 했다. 즉 결혼제도를 만든 것도 여와였다.


 

인간들이 시끌벅적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여와도 만족했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여와가 진흙으로 인간을 만들 때 하나하나 정성껏 만든 피조물도 있었지만, 끈에 진흙을 묻혀 사방에 흩뿌리면서 인간을 만들기도 했다. 훗날 착하고 부자가 된 인간은 여와가 정성껏 빚은 인간의 후손들이었고 성질이 난폭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끈으로 대충 만든 인간의 후손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여와는 어떻게 생겼을까? 반고의 몸에서 생겼다는 설도 있고 반고와 같은 창조신으로 스스로 세상에 나왔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중국인들에게 여와는 복희, 신농과 함께 삼황으로 추앙 받고 있다. 또 문헌에 따라서는 여와가 복희의 아내였다고도 하고 누이였다고도 한다. 인간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도 여와가 인간을 진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일까? 사람이 죽으면 썩어 흙이 되는 모습을 본 고대인들의 상상력의 발로가 진흙 인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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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노메와 오피온은 왜 그리스 신화에서 잊혀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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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태초에 우주는 혼돈Chaos이라 불리는 허공만이 존재했다. 그리스 신화의 시작은 이 혼돈의 허공 속에서 창조의 힘이 출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그리스 신화에서 흔히 알고 있는 창조의 힘이 바로 지모여신地母女神 가이아Gaia. 크로노스Kronos와 제우스Zeus를 비롯한 올림포스의 신들은 그 계보가 모두 가이아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여러 고대 그리스 문헌에 따르면 가이아 말고도 또 다른 창조의 힘 즉 창조신이 등장한다. 물론 현재 그리스 신화에서 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또 다른 버전에는 가이아에 해당하는 창조의 여신 에우리노메Eurynome가 등장한다.에우리노메는 태초의 뱀 오피온Orphion과 결합해 세상을 창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창조 활동은 뚜렷한 계보를 형성하지 못하고 잊혀지고 만다. 왜 그랬을까? 토마스 불핀치(Thomas Bulfinch, 1796~1867, 미국)가 정리를 소홀히 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창조신으로서의 에우리노메와 오피온을 체계화한 사람은 영국의 시인 로버트 그레이브스(Robert Graves, 1895~1985)로 알려졌다. 그레이브스에 따르면 창조의 여신 에우리노메는 비둘기로 형상화되었다. 혼돈을 깨고 우주에 최초로 존재한 에우리노메는 하늘과 바다를 분리한 후 오피온을 낳았다. 오피온이 에우리노메와 상관없이 태초에 존재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혼돈을 깬 에우리노메는 거대한 알을 하나 낳았는데 오피온이 똬리를 틀어 그 알을 따뜻하게 감쌌고 드디어 그 알이 부화하면서 우주의 모든 존재가 생성되었다고 한다. 즉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비롯해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us, 산의 신 우레아Urea, 바다의 신 폰토스Pontus가 그 알에서 나왔고 우주의 별과 행성들도 모두 에우리노메의 알에서 생성되었다고 한다. 한편 또 다른 문헌에 따르면 에우리노메와 오피온은 크로노스와의 싸움에서 져서 바다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그래서 2세기 경 파우사니아스Pausanias가 쓴<그리스 안내>라는 책에는 에우리노메가 인어의 형상을 하고 등장하기도 한다. 결국 창조신으로서 에우리노메와 오피온은 그 역할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지 못하면서 때로는 또 다른 버전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에게 패배함으로써 독자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태초의여신 에우리노메는 비둘기로 형상화되었다.

 

게다가 에우리노메의 존재는 극히 일부 그리스 고대 문헌에만 존재하는데 다른 그리스 신들과는 달리 체계화되지 못하고 창조신에서부터  보통의 신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헤시오도스(Hesiodos, B.C8세기경)<신통기>에는 오케아노스Oceanos와 테티스Thetis의 딸로 등장해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강의 신 아소포스Asopos를 낳았다고도 한다. 또 호메로스(Homeros, B.C8세기경)의 그 유명한 <오디세아아>에서는 오디세우스Odysseus의 아내 페넬로페Penelope의 시녀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 그리스 신화에는 페르시아의 왕으로서의 에우리노메가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꽃에 관한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에우리노메가 낳은 알을 오피온이 품고 있다. 이 알에서 세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태양신 헬리오스Helios를 사모하는 님프 클리티아Clytia가 있었다. 하지만 헬리오스가 사랑하는 신은 따로 있었다. 헬리오스는 에로스의 납화살을 맞고 레우코토에Leucothoe라는 처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와 전쟁의 신 아레스Ares는 헤파이스토스Hephaistos에게 불륜 현장을 들켜 큰 망신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 사실을 헤파이스토스에게 알려준 신이 바로 헬리오스였다.  아프로디테가 헬리오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아들 에로스를 시켜 납화살을 쏴 레우코토에와 사랑에 빠지게 한 것이다. 어쨌든 클리티아는 자신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헬리오스를 짝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클리티아는 레우코토에에게 불타는 질투심을 느끼고 그녀를 모함하기에 이른다. 클리티아는 레우코토에가 헬리오스에게 순결을 잃어 처녀가 아니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이 소문을 들은 레오코토에의 아버지 에우리노메는 딸을 산 채로 땅에 묻고 말았다. 레우코토에가 죽었다고 해서 헬리오스가 클리티아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 에로스의 납화살을 맞으면어떤 신도 그 운명을 거역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클리티아는 9일 동안이나 굶으며 태양신 헬리오스만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땅에 박혀 해바라기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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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키와 닌후르쌍, 에덴 동산 신화의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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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신화】누구나 낙원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에덴 동산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에덴은 사람들에게 무한한 동경의 대상이다. 그곳의 삶이 어떤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성경 속 또는 히브리 신화 속 에덴 동산의 원형이 메소포타미아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수메르 신화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에덴의 어원이 수메르어에서 황무지나 땅을 의미하는 에디누Edinu에서 유래됐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수메르 신화 중에 엔키와 닌후르쌍 신화가 있는데 신화학자들은 바로 이 신화가 히브리의 에덴 동산 신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원래 엔키Enki는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창조신 중의 한 명이다. 수메르 최고의 신이자 하늘의 신인 엔릴Enlil의 형제이기도 한 엔키는 지하수, 지혜, 기술의 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 편에 섰던 신으로도 유명하다. ‘엔키와 닌후르쌍 신화에서는 지하수의 신으로 출현한다. 한편 닌후르쌍Ninhursag도 수메르 주요 신 중에 한 명인데 수메르 최고의 신 엔릴의 아내이자 대지의 모신인 키Ki가 나중에 닌후르쌍으로 불렸다. 수메르 신화에서 우주의 창조는 엔릴과 키의 결합으로 가능했다. 또한 더 이상 엔릴의 아내가 아닌 누이로 묘사되기도 한다.


 ▲닌후르쌍. 사진>구글 검색

 

엔키와 닌후르쌍 신화의 배경은 딜문Dilmun이다.  수메르 신화에서 딜문은 우리가 알고 있는 낙원, 파라다이스, 에덴 동산의 모습 그 자체다. 질병도 없고, 늙지도 않으며, 어떤 해로운 동물도 없고, 우물에서는 단물이 솟는 등 늘 밝은 빛이 내리쬐는 아름다운 곳이다.이 딜문에서 지하수의 신 엔키와 대지의 여신 닌후르쌍은 결혼을 해서 닌싸르Ninsar라는 새싹의 여신을 낳는다.  엔키도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못지않은 난봉꾼이었는지 딸인 닌싸르와 관계를 맺고 산의 여신인 닌쿠라Ninkurra를 낳게 된다. 게다가 손녀인 닌쿠라와 결합해서 웃투Uttu라는 피륙의 여신을 낳았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가 남편인 제우스의 바람기에 늘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던 것처럼 닌후르쌍도 더 이상 엔키의 난봉을 참을 수 없었다. 급기야 엔키는 웃투에게까지 잠자리를 요구하게 된다. 화가 난 닌후르쌍은 웃투에게 결혼 선물로 오이, 사과, 포도를 요구하라고 웃투에게 충고했다. 하지만 이런 걸로 엔키의 바람기를 막지는 못했다. 엔키는 요구한 선물을 모두 주고 손녀의 딸이자 자신의 딸인 웃투와 결혼을 하게 된다. 더 이상 참고 있을 닌후루쌍이 아니었다.

 

닌후르쌍은 웃투의 뱃속에서 엔키의 정액을 꺼내 대지에 뿌렸다. 엔키의 정액이 뿌려진 여덟 가지 식물이 자랐는데 닌후르쌍이 미처 이 식물들의 이름과 속성을 짓기도 전에 먹어치워 버렸다. 자존심이 상한 닌후르쌍은 엔키를 저주하고 떠나 버렸다. 그 결과 엔키의 몸에는 여덟 군데에서 질병이 생기게 되었다. 엔키는 어쩔 수 없이 닌후르쌍을 찾아가 저주를 풀어달라고 애원했다. 한편 수메르 주요신 두 명의 불화는 다른 신들에게도 큰 걱정거리였다. 결국 신들의 설득으로 엔키의 저주가 풀렸다. 이 과정에서 닌후르쌍은 여덟 명의 신을 새로 창조해 냈다고 한다. 엔키의 아들들인 셈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평화로운 낙원에서의 삶이라도 정도를 지킬 때에만 지속성을 보장받는다는 교훈일까? 하물며 그럴진대 속세에서의 삶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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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달로스, 자만에 빠졌던 천재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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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아리아드네Ariadne의 실이라는 말이 있다. 사랑하는 연인 테세우스가 괴물과 싸우기 위해 미궁으로 들어갔을 때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의 몸에 실을 묶고 미궁 밖에서 실타래를 푸는 방식으로 테세우스가 무사히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했다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말이다. 즉 어떤 어려운 일에 봉착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아리아드네의 실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서양이나 동양이나 사람들의 생각은 크게 차이가 없나 보다. 감겨있거나 헝클어진 실의 첫 머리를 실마리라고 하니 말이다. 어쨌든 테세우스는 탈출했지만 미궁[迷宮, Labyrinth]은 그 길이 하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누구든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사건의 해결이 요원할 때 미궁에 빠지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미궁을 처음으로 만든 자가 바로 그리스 신화 속 건축가이자 조각가이며 공예가였던 다이달로스Daidalos였다. 그렇다면 다이달로스는 어떻게 미궁을 만들게 됐을까?

 

다이달로스, 한번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을 만들다

 

고대 크레타의 왕 미노스Minos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왕비 파시파에Pasiphae가 반인반수의 아들 미노타우로스Minotauros를 낳은 것이다. 백성들이 볼까 두려워했던 미노스 왕은 어떻게든 미노타우로스를 숨겨야만 했다. 그 전에 파시파에가 반인반마의 아들을 낳은 것은 황소와의 불륜이었지만 사실은 포세이돈Poseidon이 미노스에게 내린 저주였다. 둘째였던 미노스가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포세이돈에게 간청해 바다 위로 신성한 황소를 떠오르게 해서 백성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노스는 이 신성한 황소를 포세이돈에게 제물로 바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신성한 황소 대신 평범한 소를 대신 제물로 바쳤다. 분노한 포세이돈은 주술을 걸어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가 황소와 사랑에 빠지게 했고 그 결과 낳은 아들이 미노타우로스였다.


 ▲다이달로스와이카로스. 사진>구글 검색

 

아테나Athena로부터 기술을 배웠던 다이달로스는 직접 설계해서 만든 미궁을 미노스에게 선물했고 미노스는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하도록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인 황소인 아들 미노타우로스를 미궁에 가두었다. 앞서 얘기했듯이 누구도 나오지 못하도록 만든 미궁을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탈출했다고 했는데 실은 아리아드네도 미궁 설계자이자 제작자인 다이달로스에게 간청해 그 방법을 알아낸 것이었다. 한편 이 미궁을 탈출했던 자는 테세우스 말고도 한 명 아니 두 명이 더 있었다. 미궁을 만들었던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Icarus였다.  새의 깃털을 모아 날개를 만들어 미궁을 탈출했는데 너무 높이 날지 말라는 다이달로스의 충고에도 하늘을 날고 있다는 신기함에 이카로스는 태양과 점점 더 가까이 비행을 하면서 날개를 봉합하고 있던 밀랍이 녹아 추락해서 죽고 말았다. 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 천재적인 재능으로 미궁도 만들었고 또 미궁을 탈출할 수 있는 날개까지 만들었건만 아들의 비참한 최후를 눈 앞에서 지켜봐야만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다이달로스는 아들과 함께 미궁에 갇히게 되었을까?

 

자만에 빠졌던 천재, 과연 그는 행복했을까

 

다이달로스의 조언으로 실타래를 이용해 테세우스를 구출했던 미노스이 딸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가 미궁을 빠져나오자마 같이 야반도주를 하고 말았다. 딸 사랑이 남달랐던 미노스는 실의에 빠졌고 딸에게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던 다이달로스에게 분노했고 그 복수로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를 미궁에 가두었던 것이다. 다이달로스가 미노스 왕의 미움을 받았던 것은 단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왕비 파시파에가 황소와 맘껏 사랑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다이달로스가 나무로 암소를 만들어 그 속에서 밀애를 즐길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알고도 참았지만 다이달로스로 인해 딸까지 자신을 떠났으니 미노스 왕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과신했던 다이달로스의 행각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아테네에서 태어났던 다이달로스가 크레타 섬으로 온 데는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

 

아테나로부터 기술을 배웠던 다이달로스는 누이 페르딕스Perdix의 아들 탈로스Talos를 제자로 받아 들였다. 핏줄은 못 속인다고 삼촌 못지않게 조카였던 탈로스의 재주도 여간이 아니었나 보다. 탈로스는 뱀의 턱뼈를 보고 톱을 발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카의 천재성에 질투를 느낀 다이달로스는 탈로스를 언덕에서 떨어뜨려 죽이고 말았다. 다이달로스의 천인공노할 범행은 곧 발각되었고 아테네로부터의 추방이라는 판결을 받고 크레타 섬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일설에는 그의 범행이 발각되기 전에 도망쳤다고 한다. 이런 자만심과 질투의 최후가 아들의 죽음이 아니었을까?

 

날개를 만들어 미궁을 탈출한 다이달로스는 자신처럼 자만에 빠진 아들의 죽음을 뒤로 하고 시칠리아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의 천재적인 재능 때문에 과거는 묻힌 채 이 곳에서도 호의호식하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자신의 자만과 질투 때문에 아들을 잃은 아비가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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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농, 현진건의 설렁탕이 떠오르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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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화】인력거꾼 김첨지는 그날 따라 운이 좋았다. 손님이 줄을 잇고 자신의 구역이 아닌 곳에서도 손님을 태웠다. 그야말로 행운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운에도 불구하고 김첨지에게는 알 수 없는 불안이 엄습해 오고 있었다. 아내는 열흘째 아파 누워 있었고 세 살배기 아이는 아픈 엄마 젖이나 빨며 굶주리고 있을 터였다. 게다가 아내는 아침에 일을 나서는 그를 말리기까지 했다. 소설에서 불길한 예감은 늘 틀리는 법이 없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고주망태가 된 김첨지는 집으로 갔다. 불길한 예감을 애써 지우려는 듯 누워있는 아내를 일부러 걷어 차보기도 하고 소리도 질러보지만 아내는 이미 주검이 되어 있었고 아이는 죽은 엄마의 빈 젖을 빨다 지쳐 탈진해 있었다. 김첨지는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내며 푸념을 한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현진건의 소설<운수 좋은 날>에서 김첨지가 아내를 위해 사온 게 값비싼 고급 음식이었다면 그 비극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으리라. 누구나 오다 가다 간단하게 한 끼 때울 수 있는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설렁탕이었기에 독자도 김첨지와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었을 것이다. 신화 얘기를 하다 옆길로 새도 한참 새고 말았다. 어쨌든 중국 신화에서 여와의 계승자 신농[神農, Shennong] 이야기를 시작하려니 문득 설렁탕이 떠올랐고 설렁탕 하니 또 현진건의 소설이 뇌리를 스쳤다. 무슨 관계가 있긴 있는 모양인데 그 이유는 마지막에 설명하고자 하고 우선 신농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중국 신화에서 신농은 농업의 신이자, 의약의 신, 약초의 신으로 통한다. 신농이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가진 것으로 묘사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신농은 또 불을 관장하기도 했기 때문에 염제[炎帝]라고도 부른다. 즉 염제 신농은 태양의 신이기도 한 것이다. 농사와 해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자연스레 추측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신농은 태어날 때부터 인신우두[人身牛頭]였다. 태어난 지 사흘 만에 말을 하고 닷새 만에 걸었다고 하니 어릴 적부터 범상치는 않았나 보다. 염제가 신농 또는 신농씨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가 최초로 나무를 깎아서 호미를 만들고 나뭇가지를 구부려서 호미를 만든 농기구의 발명자이자 인간에게 최초로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차를 즐기는 중국 문화의 시조이기도 하다.이런 이유로 신농은 황제와 더불어 중국인의 시조로 여겨지기도 한다.

 

약을 발명하고 병을 치료했던 의약의 신으로도 불리기 때문에 그의 죽음도 이와 관련된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신농은 풀의 성질을 파악해 그 효능을 따져 약초로 쓰려 했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종의 독초를 맛보면서 그 독성을 파악했다고 한다. 그러니 중독의 덫을 피해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약초를 발견하고 병을 치료했던 신농이지만 정작 자신은 독초에 중독되어 죽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요즘 다양한 차문화를 즐기는 것도 신농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 한편 횃불을 처음 발명한 것도 신농이라고 한다.

 

다시 설렁탕 얘기로 돌아가 보면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에는 선농단이라는 제단이 있다. 선농단은 조선시대 봄이 되면 임금이 직접 참석해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농업사회였던 조선에서 이 행사는 상당히 큰 규모로 진행되었으리라. 또 임금은 이 때만은 백성들과 함께 직접 소를 몰고 밭을 가는 의식을 했다고 하니 그 행사의 중요성을 가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제사가 끝나면 임금은 백성들에게 술과 음식을 내렸는데 바로 그 음식이 소뼈를 푹 고은 선농탕이었다고 한다. 이 선농탕이 지금의 설렁탕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설렁탕이 몽고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냈던 그 곡식의 신이 바로 신농[神農]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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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라코차, 창조신인 그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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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신화]콘 티키 비라코차Con Ticci Viracocha, 투누파 비라코차Thunupa Viracocha, 비라코차 파차야차치크Viracocha Pachaya-chachic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비라코차Viracocha는 잉카 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신이다.비라코차는 태초의 암흑의 시간과 공간을 지나서 티티카카 호수에서 솟아난 잉카의 창조신이자 태양신이다. 잉카 몇몇 지역에서는 창조신을 '땅과 시간을 만든 자'라는 의미의 파차카막Pachamac으로 부르기도 한다. 티티카카 호수에서 모습을 드러낸 비라카차는 거인족이었던 최초의 인류를 창조했다. 최초의 인류는 일정 기간 동안 암흑 속에서 생활했는데 어느날 비라코차는 자신이 창조한 최초의 인류에 실망해 홍수를 일으켜 그들을 익사시키고 돌로 만들고 말았다.하지만 어느 문헌도 비라코차가 자신이 창조한 최초의 인류에게 실망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혹자는 비라코차가 자신이 창조한 최초의 인류에게 동굴 속에서 적당한 때를 기다리라고 했으나 이를 어겼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인간의 성급함과 조급함이 낳은 참사라고나 할까? 참고로 세계 각국 신화를 보면 공통적으로 인간을 홍수로 멸망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은 최초의 인류가 오만과 자만에 빠지고 신을 제대로 섬기지 않기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 속 신들처럼 비라코차도 변덕이 심했는지 인류를 멸망시키고는 다시 티티카카 호수 주변의 조약돌로 두 번째 인간을 만들어 냈다. 인간을 만들기 전 비라코차는 태양과 달과 별을 창조한 후 티티카카 호수의 한 섬으로 불러 모았다. 비라코차가 창조한 두 번째 인간은 네 부류였는데 남자와 임신한 여자, 임신하지 않은 여자 그리고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비라코차가 잉카 최고의 신으로 등극한 데는 비단 인류를 최초로 창조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을 창조한 비라코차는 언어와 관습을 가르쳤고 스스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양식과 열매, 식량을 주었고 각기 다른 옷으로 종족을 구분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한다. 두 번째 인간을 창조한 비라코차는 이어서 모든 동물의 암컷과 수컷을 창조해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게 했다. 

 ▲눈물흘리는 비라코차. 사진>구글 검색


인간을 창조한 비라코차는 두 사람만 남기고 나머지는 동굴과 암흑 세계로 내쫓았는데 그 두 사람은 이마이마나 비라코차Imaymana Viracocha, 토카포 비라코차Tocapo Viracocha라는 이름의 두 아들이었다고 한다. 훗날 인간이 살게 될 특정 장소로 수용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드디어 비라코차급의 창조자였던 두 아들과 함께 세 창조신은 각자의 여행을 통해 그 지방 종족들의 조상을 동굴과 암흑 속에서 불러냈다. 세 창조신은 자신들이 지나가는 장소에서 모든 나무와 식물의 이름을 부르고 각각의 나무와 식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될 때를 말했다. 즉 때가 되면 새싹이 돋고 꽃이 피며 열매가 맺는 것은 모두 세 창조신의 이런 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한편 창조자의 모습은 키가 큰 백인의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아무래도 잉카 신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이들이 잉카 지역을 침략한 스페인의 선교사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잉카 신화의 편집을 통해 백인 기독교 사회의 우월성을 내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심지어 백인 편집자들은 그들이 안데스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잉카인들이 기독교도를 따르고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황당하지만 잉카 신화에서 대부분의 신들은 키가 크고 턱수염이 났고 흰 피부를 가진 서양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더니 신화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어쨌든 안데스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창조 행위를 비라코차였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첫 번째 인류를 홍수로 멸망시킨 비라코차였지만 또 다시 인간들이 신의 말을 듣지 않고 오만한 태도를 보이리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는 곳마다 병자들을 고치고 맹인들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었지만 인간들은 그에게 돌을 던지는 등 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참지 못한 비라코차는 하늘을 향해 무릎을 꿇었고 지팡이를 세 번 쳐서 불을 일으켰고 곧 하늘이 불로 뒤덮였다. 뒤늦게야 상황을 파악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인간들을 위해 불을 껐지만 그 배신과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비라코차는 예언했다. 오만한 인간들 때문에 언젠가 또 한 번의 대홍수로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고. 비라코차를 묘사한 가면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자신이 창조한 인간이 또 다시 그 오만함으로 멸망의 늪으로 빠질 것임을 알고 있었으니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때를 기다리라며 인간을 들여보낸 동굴이 현재의 페루 쿠스코 남쪽 약 33km 지점에 있는 '새벽의 술집'이라는 뜻의 파카리탐보Pacaritambo라고 한다. 잉카 신화에 따르면 아직도 이 곳은 잉카인들의 혈통이 시작된 곳으로 숭배되고 있다.<참고: 잉카 신화(범우사), 신화와 전설(21세기 북스), 네이버, 다음, 구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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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와 우라노스, 그리스 신화의 시작을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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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서양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시작은 대지의 신[母神] 가이아Gaia로부터 시작된다. 가이아는 자신이 낳은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us와 결합해 크로노스Kronos와 제우스Zeus에 이르는 그리스 신화의 핵심 계보를 형성한다. 즉 제우스를 기준으로 크로노스, 우라노스는 각각 아버지, 할아버지에 해당한다.


태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광활하고 어두운 혼돈Chaos이라 불리는 허공만이 있었다. 이 혼돈의 허공 속에서 최초의 창조의 힘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모신 가이아였다. 가이아에 관한 기록은 BC 700년 경의 그리스 시인이었던 헤시오도스Hesiodos의 <신통기>('신의 계보'라고도 한다)에 잘 묘사되어 있다. 태초의 창조자 가이아는 지상과 지하에 각각 에로스Eros와 타르타로스Tartaros라는 신을 창조했다. 또 이때 어둠의 신 에레부스Erebus와 밤의 신 닉스Nyx도 태어났다. 에로스는 에레부스와 닉스를 결합해 공기의 신 아이테르Aether와 낮의 신 헤메라Hemera를 창조했다. 또 에로스는 가이아와 결합해 산과 바다 그리고 그리스 신화의 계보를 형성하게 될 하늘의 신 우라노스를 낳았다. 


모신 가이아의 창조활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식인 우라노스를 남편으로 삼아 티탄족을 낳았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오케아노스, 히페리온, 크로노스, 레아, 테미스, 포이베, 테티스, 므네모시네 등이 그들이다. 이들 티탄족 중에서 크로노스와 레아Rhea가 결합해 낳은 아들이 올림포스의 지배자 제우스였다. 신화에서 늘 그렇듯 가이아도 제우스 못지않은 난봉꾼이었다. 



 ▲모신 가이아, 사진>구글 검색


가이아는 우라노스의 눈을 피해 자신이 낳은 오케아노스와 타르타로스와 바람을 피워 훗날 '신들의 전쟁'의 원인이 되는 괴물들을 낳았다. 외눈박이 키클롭스, 백 개의 팔과 천 개의 다리를 가진 헤카톤케이레, 독사 히드라, 지옥의 개 케르베르소, 태풍의 어원이 된 티폰 등이 그들이었다. 대부분 괴물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남편인 우라노스는 이렇게 흉측한 괴물들을 자식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우라노스는 가이아가 오케아노스, 타르타로스와 바람을 피워 낳은 이 괴물들을 암흑의 지하세계로 추방해 버렸다. 가이아는 이런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다. 아무리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자식인지라.


결국 가이아는 우라노스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티탄족들에게 같이 행동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우라노스의 강력한 힘에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때 나타난 자가 바로 막내아들 크로노스였다. 가이아는 크로노스에게 낫을 주었고 크로노스는 아버지인 우라노스가 어머니 가이아에게 접근할 때 그의 성기를 낫으로 잘라 버렸다. 이 때부터 땅과 하늘이 영원히 분리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들크로노스에게 거세당하는 우라노스. 사진>구글 검색


아들에게 패한 우라노스, 게다가 남성의 상징까지 잃어버렸으니 체면이 말도 아니었을 터. 우라노스는 한 가지 예언을 하고는 신화 저 뒤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 예언은 바로 아들 크로노스가 지금 자신과 똑같은 상황을 훗날 겪게 될 것이라는 저주였다. 실제로 크로노스는 아들 제우스에 의해 파멸당하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진다. 우라노스의 퇴장은 또 다른 신들의 등장을 알리는 서막이기도 했다.


잘려진 우라노스의 성기에서 나온 피는 바다 한가운데로 튀었고 흰 포말이 되어 여기에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가 탄생했다. 아마 조개껍질 속에서 태어나는 비너스Venus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로마 신화의 비너스가 바로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와 동일 인물이다. 한편 거세당한 우라노스의 성기에서 흘린 정액은 가이아(대지)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 또 다른 불화의 씨앗을 만들고 만다. 이 때 태어난 신들이 거인족인 기간테스Gigantes, 복수의 신 에리니에스Erinyes였다.


한편 가이아가 낳은 태초의 신, 티탄족들은 여러 천체도 지배했는데 포이베와 아틀라스가 달을 지배했고, 레아와 크로노스는 토성을 지배했으며 테이아와 히페리온은 태양을 지배했다. 아들 크로노스에게 패한 우라노스는 토성보다 먼 천왕성을 대표하는 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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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신, 오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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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일(日),월(月),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동양의 요일이 음양(일,월) 오행(화,수,목,금,토)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웬만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모두 아는 지식이다. 그렇다면 선데이(Sunday), 먼데이(Monday)로 시작하는 서양의 요일은 그 기원이 어디일까? 신화를 빌어 요일 얘기를 하고자 한다. 첫번째로 살펴볼 요일은 수요일(水曜日, Wednesday)이다. 막연하게 어릴 적 들었던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란 노래가 생각나서 왠지 친근감이 느껴져서다. 결론부터 말하면 서양의 수요일(Wednesday)는 북유럽 최고의 신 오딘(Odin)에서 비롯됐다. 주로 게르만 민족이 섬겼던 신으로 고대 인도어로는 보탄(Wuotan)이라 불렀고, 고대 영어로는 보딘(Woden)이라고 불리면서 영어 'Wednesday'의 어원이 됐다.즉 서양에서 수요일은 '오딘의 날'이라는 뜻이겠다.


하기야 게임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이런 지식이 새삼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 영화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천둥의 신, 토르>뿐만 아니라 게임의 '리니지'와 '라그나로크'등이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오딘의 외모부터 살펴보면 기존의 신들과는 꽤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이 든 노인의 얼굴에 눈은 애꾸눈이며 창이 큰 모자로 그 눈을 가리고 있다. 또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나 포세이돈이 늘 가지고 다니던 번개나 삼지창과는 달리 지팡이 하나를 들고 있다.신 치고는 행색이 초라해도 너무 초라하다. 비록 이런 행색이지만 오딘은 분명 북유럽 최고의 신이다. 그렇다면 오딘의 이런 외모에 담긴 뒷얘기 또는 사연이 있지 않을까? 

 ▲오딘. 사진>구글 검색


오딘은 최초의 신 부리의 아들 보르와 볼트호른이라는 거인의 딸 베스트라가 결합해 나은 아들이다. 이 커플은 오딘 뿐만 아니라 빌리(Vili)와 베(Ve)라는 자식까지 모두 셋을 낳았는데 이들이 북유럽 최초의 신이 되었고 그 우두머리가 오딘이었다.오딘은 아우들과 힘을 합쳐 태초의 거인 이미르를 죽였는데 이 때 이미르의 혈관에서 피가 바다처럼 흘러나와 태초의 서리 거인이 다 빠져죽고 베르겔미르와 그의 아내만이 살아남아 요툰하임이라는 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미르를 격퇴한 오딘과 그 형제들은 이미르의 살로로 지구를 만들고 뼈로는 산맥을 만들었다. 또 이미르의 털로는 숲을 만들었고, 이때 흘러나온 피로는 바다와 호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또 그들은 무스펠하임에서 하늘 높이 불꽃을 쏘아 올려 태양과 달과 별을 만들었다. 한편 이들 형제들은 최초의 인간도 창조했는데 물푸레나무로 최초의 인간인 아스크를 만들었고, 느릎나무로 최초의 여자인 엠블라를 만들었다.


짐작하겠지만 오딘이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지혜가 많다는 것을 상징한다. 오딘이 지혜의 상징이 된 데는 애꾸눈과 관련이 있다. 오딘은 지혜를 얻기 위해 지혜의 정령이자 거인인 미미르가 지키는 지혜의 샘물을 얻기 위해 자신의 한 쪽 눈을 바쳤다고 한다.차양이 넓은 모자는 그런 눈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또 그의 어깨에는 푸긴과 무닌이라는 두 마리의 까마귀가 앉아 있는데 이 까마귀들이 세상을 날아다니며 세상 일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으니 탁월한 지혜를 갖지 않을 수 없었겠다. 그래서 그는 룬 문자를 발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들고 있는 지팡이는 간반테인이라고 하는데 그 지팡이는 타인의 마술을 무력화시키는 힘이 있었다고 한다. 또 오딘이 들고 있는 궁니르라고 부르는 투창은 던지면 적을 맞추고 다시 오딘에게 돌아온다고 한다. 또 오딘이 끼고 있는 반지인 드라우프니르는 매일 밤 아홉 개의 반지가 새로 생성되는데 오딘은 이 반지를 전투에서 승리한 전사들에게 하사했다. 

 ▲오딘의말 '슬레이프니르'. 사진>구글 검색


발이 여덟 개 달린 오딘의 말은 슬레이프니르라고 부르는데 하늘을 날며 오딘을 죽은 자의 나라로 때로는 죽은 자를 오딘에게 데려올 수도 있었다고 한다. 오딘의 말 슬레이프니르의 탄생 일화 또한 재미있는 신화 이야기 중에 하나다. 한 거인이 한 번의 겨울이 끝나기 전에 신들을 위한 벽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거인은 그 댓가로 여신 프레야와 태양, 달을 약속받았다. 신들은 당연히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거인은 스바딜파리라고 하는 말을 데리고 와서 정해진 시간에 벽을 거의 완성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불안감을 느낀 신들은 아스가르드의 책략가 로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로키는 암컷 나귀의 모습을 하고 거인이 데려온 말 옆에서 울면서 일을 하지 못하도록 유혹했다. 결국 거의 완성 단계에서 일을 그르치고 말았고 거인은 토르의 망치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때 거인의 말을 유혹하기 위해 암컷 나귀로 변신한 로키가 낳은 망아지가 훗날 오딘의 말 슬레이프니르가 되었다.


한편 오딘은 죽음의 신이기도 했다. 노인 행색을 하고 있는 것도 그만큼 죽음에 가까웠다는 상징일 것이다. 전사자들을 죽음의 공간인 발할라로 인도한 오딘의 전령이 처녀 전사들인 발키리였다.참고로 발할라는 '전사자의 큰 집' 또는 '기쁨의 집'이라는 뜻으로 발키리가 명예롭게 전사한 군인들을 이곳으로 데려와 낮에는 세계 종말에 대비해 전투훈련을 받았고 밤에는 모두 되살아나서 산해진미를 즐기며 생활했다고 한다. 병이 나거나 늙어서 죽은 사람들은 이곳에 들어올 수 없었다. 명예롭고 용감한 전사들만이 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발할라는 북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일종의 이상향이었던 것이다.<계속>

참고:<스칸디나비아 신화>, <신화와 전설>, <켈트 북구의 신들>, 네이버/다음/구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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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여제 김연경, 세월호 망각에 강스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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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뜨거운 심장을 가졌고 누구보다 분노했다. 아니 여전히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분노한다.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온 데는 이름없는 민초들의 불의에 맞서는 뜨거운 심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누구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갈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 또한 존재한다. 늘 2% 부족한 마무리. 그것은 바로 뜨거워지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식어가는 분노 즉 망각 때문이다. 친일파 청산이 그랬고, 민주화 과정이 그랬다. 친일파와 권위주의 집단은 여전히 사회 기득권 세력을 형성하고 있고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쟁취(?)했고 기회만 되면 건국절 운운한다.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피로감이니 뭐니 하면서 눈감아 주었던 불의는 잠시 몸을 숨기다 '이때다' 싶으면 거대한 조직이 되어 반격을 시도한다. 


세월호가 그렇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아직 우리 사회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2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된 진상규명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안전사고는 세월호 이전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피로하다고 한다. 아니 정부와 보수언론이 눈만 뜨면 세월호 피로감을 반복했다. 마치 세뇌라고 시키려는 듯 시민들의 비판에는 눈과 귀를 가리고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우익 단체들을 이용하기도 했고 철없는 어린 학생들의 치기어린 장난을 이용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정부와 보수언론을 비난하면서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들의 논리대로 세월호 피로감을 얘기하고 있다. 무섭다. 벌써 세월호 참사 2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는데 말이다. 정부와 보수언론의 위선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망각'이다.

 

 ▲김연경 선수가 세월호 분향소에 남긴 방명록


오늘 아침 조간신문에는 우리의 '망각'에 강스파이크를 날리는 기분 좋은 기사가 실렸다. 세계적인 배구 스타, 배구 여제 김연경 선수(터키 페네르바체 소속)가 세월호 분향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방명록에는 '조금이라도 힘이 되기 위해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편안히 쉴 수 있게 노력할께요.'라고 적었다. 안산이 고향인 김연경 선수는 유가족과 만난 자리에서도 "이적 문제로 힘든 적이 있었다. 그 때 모든 사람이 진실이 아니라고 했지만 지금은 진실로 밝혀졌다."며 "세월호 문제도 잘 될 것이라고 믿는다. 힘내시라는 말을 드리고 싶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고 한다. 


김연경 선수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에도 분향소를 방문했고 참사 직후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검은 리본을 달고 터키 리그 챔피언 결정전을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유명 스타들의 꾸준한 관심이 잊혀져가는 세월호를 다시금 뇌리에 불러내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사실 지난 총선을 통해 여소야대 정국이 되었지만 아직은 뚜렷한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야성이 무뎌진 탓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시민들의 관심이다. 그나마 야당 국회의원들이 세월호 문제를 언급하면 일부 종편을 비롯한 보수언론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해당 국회의원을 비난한다. 2년이 지나서일까? 이제는 노골적이다. 경제 상황이 급박한데 그런 데(세월호) 신경쓸 여유가 있냐고.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친일청산 운운하냐며 겁박하는 모양새와 똑같다. 해답은 단 하나다. 정부와 보수언론의 이런 치졸한 공작에 맞설 수 있는 단 하나의 해답은 '잊지 않는 것'이다. 김연경 선수처럼 세월호 '망각'에 강스파이크를 날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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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의 신, 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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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그 유명한 달마대사였지만 그가 혜가 스님을 만나기 전에는 제자가 없었다. 아니 제자를 두려고 하지 않았다. 온 세상이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겨울 어느날 혜가가 소림사를 찾았다. 달마대사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였다. 달마대사는 제자가 되기를 청한 혜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눈을 붉게 만들 수 있겠느냐?"라고. 마법을 쓰지 않고서야 어떻게 눈을 붉게 만들수 있겠느냐마는 달마대사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통과해야 할 관문이었다. 혜가는 질문을 받자마자 차고 있던 칼로 자신의 왼팔을 잘라 흰눈을 붉게 물들여 보였다. 당황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달마대사는 이런 혜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수행승이었던 혜가 스님은 속세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팔을 바친 것이다. 물론 세속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스승으로 달마대사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육신의 고통을 감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혜가 스님이 속세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참진리의 길을 찾기 위해 팔 하나를 바쳤다면 북유럽 신화의 티르Tyr는 인간 세상의 종말을 막기 위해 오른손이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게르만족에게 티르는 로마의 신 마르스에 해당한다. 독일식 티바츠Tiwz, 영국에서는 티우Tiw라고 불렀다. 티르는 스칸디나비아 신전에서 부르는 이름이었다. 티르는 승리를 가져다 주는 신이다. 또 법과 질서의 신이었고, 전투의 신이었다.북유럽 신들 중에 가장 오래된 신으로 알려졌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처음에는 주신의 위치에 있었지만 나중에 토르나 오딘 등에 그 지위를 빼앗긴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쟁을 치를 때마다 티르에게 도움을 청했고 앵글로색슨 시대 초기에는 무기에 티르의 이름 첫 글자를 나타내는 T를 룬 문자로 표기했다는 것으로 봐서는 티르의 위상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또 화요일에 해당하는 영어 'Tuesday'도 티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분명 주신의 위치에 있었던 게 분명해 보인다.티르가 북유럽 신화의 주신 중 한 명이지만 그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티르는 늘 허리에 검을 찬 오른손이 없는 전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오딘이 한 쪽 눈이 없는 것처럼. 그 사연은 이렇다.

 

▲펜리르에게 오른손을 잃은 티르. 사진>구글 검색


세상의 종말을 가져오는 펜리르Fenrir라는 늑대 한 마리가 있었다. 펜리르는 북유럽 신화의 대표 스트릭터 로키의 흉악한 자손 중 하나였다. 펜리르는 아스가르드에서 신들과 함께 성장하면서 엄청나게 거대하고 사나와졌다. 그래서 티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늑대 펜리르를 기르려고 하지 않았다. 한편 예언에 따르면 펜리르는 훗날 태양까지 삼켜버릴 정도로 성장해 결국 인간 세상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결국 신들은 펜리르를 묶어 두기로 결정했다. 즉 펜리르를 포박하는 것은 인간 세상의 파멸을 막기 위한 방법이었고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처음 펜리르를 채운 족쇄는 가죽으로 만든 레딩이었다. 하지만 펜리르는 이 가죽 포박을 쉽게 끊어버리고 말았다. 당황한 신들은 보다 강력한 드로미로 펜리르를 포박했지만 이 또한 별 소용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신들은 더 강력한 포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신들은 프레이의 하인 스키르니르를 드베르그 소인국 스바르트알바헤임으로 보냈다. 그곳에서 오딘은 자신의 지혜를 이용해 난쟁이에게 절대 끊어지지 않는 포박을 만들도록 했다. 그래서 나온 포박이 글레이프니르Gleipnir였다.


글레이프니르는 겉보기에는 가는 비단처럼 보이지만 절대 끊어지지 않았다. 글레이프니르가 절대 끊어지지 않는 데는 고양이의 발걸음 소리와 여자의 콧수염, 산의 뿌리, 곰의 힘줄, 물고기의 호흡, 새의 침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고양이의 울음소리나 물고기의 호흡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강력한 세상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글레이프니르였다.하지만 펜리르는 신들이 자기 턱 사이에 손을 놓아 그 끈 글레이프니르가 해롭지 않다는 것을 보장할 때까지는 그 끈에 묶이지 않으려고 했다. 펜리르의 턱 사이에 손을 넣는 순간 잘릴 게 분명한데 어느 신들도 그런 모험을 할 용기가 없었다. 이 때 나선 신이 티르였다.


티르는 펜리르의 입에 손을 넣었고 신들은 글레이프니르로 펜리를 포박하는데 성공했다. 펜리르는 있는 힘을 다해 티르의 손목을 물었다. 펜리르를 포박하는데 성공한 신들은 기뻐 크게 웃었지만 티르는 오른쪽 손목을 잃어야만 했다.펜리르는 신들의 거처인 아스가르드가 보이는 곳에 결박되었다. 펜리르의 또 다른 이름은 가름Garm이었다. 가름은 사냥개로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면서 라그나로크(종말, Ragnarok)의 날에 티르와 맞서 싸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티르의 잘린 손목은 인간 세상의 종말을 막은 증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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